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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의 시공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아서

※ 연재순서

1: 들어가는 말

1. 씨줄과 날줄 : 중국사를 엮어온 것들

2. 오해와 편견 : 잘 안다는 것의 함정

3. 의연한 거목 : 단절 없는 역사의 자양분

2: 제국의 쇠퇴와 몰락

3: 서남공정과 동북공정

4: 자기 기억의 회복


▲천안문은 명·청시대 황조의 상징이자 현대 중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어디까지일까. ‘한국인은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중국인의 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혁과 개방 이전의 모습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유원준 교수가 통렬하게 꼬집어 준다.

중국이라는 넒은 카펫은 시대를 관통하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이란 날줄이 교직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씨줄이 쉽사리 변치 않는 문명의 저변이라면 날줄은 그 위에서 변화를 이끄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씨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환경과 공간의 크기다. 인간이 펼치는 시대극의 다양성과 규모, 성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기후의 변화가 적고, 면적이 넓지 않아 지역 차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중국이나 인도처럼 넓은 공간에서 전개된 역사를 적절한 공간 감각을 유지하면서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상식적 범주 내에서도 얼마든지 예외를 찾아볼 수 있는 나라, 환경과 언어, 풍속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의 국가 체제와 의식을 공유하는 그런 나라의 요체를 콕 찍어내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래도 국가와 문명 단위가 일치하며, 정치화된 종교가 없고, 상식이성과 적절한 불가지론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유난히 많은 인구와 농경 활동으로 자연에 막대한 과부하가 걸려 있고, 오랜 대외무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인의 활동공간이 국내에 치중했으며, 역사와 문화라는 공통의 기억과 소통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은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게 중국사의 배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공통점을 통해 카펫 전체의 모양을 조망한 다음 하나하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 구체적인 사안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서 나름대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공자와 맹자, 유비와 관우를 비롯해서 자장면과 탕수육, 만리장성과 자금성, 북경과 상해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국인은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답한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을 잘 모르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장개석이 중화민국의 총통으로서 대륙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고, ‘개석이 그의 이름이 아니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장개석이 부정부패를 바로잡기 위해 며느리의 손을 잘랐다는 전설이 우리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여러 번 나왔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등소평이 무관의 제왕으로 중국을 다스렸다는 소설 같은 기사가 신문을 도배해도 모두 다 그러려니 했다. 아무런 공적 직위도 없이 국가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사람들은 중국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무언의 동조를 보냈다.

이런 몰이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중국 지도자와 만나 한중관계의 긴밀함을 강조하면서 청도에서 닭 우는 소리가 인천에서 들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 말은 원래 가까운 이웃이지만 사이가 너무 나빠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는 원수지간이라는 상황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냥 몰라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청와대의 수준이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연평도 포격을 자행한 북한에 대해 외교적 압력을 가해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중국 정부가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김정일을 북경으로 초청해 시내 한복판에서 화려한 카퍼레이드를 벌리게 한 일이 있었다. 청와대와 일부 보수 언론이 앞장서서 중국을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표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 역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무지를 지적하며 손사래를 쳤다. 화려한 초대식의 뒷전에서 중국은 북중관계의 각별함을 들면서 대남·대미정책과 후계자 문제 등에 대해 중국과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내정간섭 문서에 도장을 찍도록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해 냉정하게 거절하거나 심한 요구를 할 때 체면치레용으로 화려한 잔치를 벌려주는 것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외교적 관례다. 이에 대해서 몰랐다고 한다면 우리 정부가 아는 것이 무엇일까?

왜 우리는 아직도 논어삼국지연의를 통해 중국을 보려고 할까? 두보와 이백은 아는데 노신은 알지 못할까? 중국인은 대륙적이기보다는 소심하고, ‘만만디라기 보다는 급하다고 하면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같은 역사문화권이었던 중국에 대해 감각적으로 파악하지 못할까? 알고보면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만의 특수한 잣대로 이 세상을 재는 것은 아닌지? 분명 돌아볼 필요가 있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에게해·마야·잉카 등 세계의 7대 고대 문명 가운데 지금까지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국문명이 유일하다. 한 때 커다란 거목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명이 있고, 다른 나무와 접붙여 생명은 유지했지만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문명도 있다. 하지만 중국문명은 거친 눈보라와 비바람 속에서 때로는 가지가 부러지고,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의연하게 수천 년 그 자리를 지켜왔다. 성장 과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중국문명은 그 어떤 문명보다도 주 영양분을 역사로부터 공급받으며 살아왔고, 꾸준한 지속성을 그 특징으로 하게 됐다. 따라서 오늘의 중국, 그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와 열매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라는 줄기를 살펴봐야만 하고, 문화라는 그 뿌리를 가늠해봐야만 한다.

중국이라는 거목의 뿌리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역사로부터 자양분을 끌어들여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까? 20세기 들어와 한 때 자신들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고, 지워보려고도 했지만 자신의 역사를 긍정하면서 중국은 다시 푸른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줄기 곳곳에 지난 시절의 상처와 옹이가 수도 없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 보여준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회복은 앞으로 중국이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을 드러내기에 족하였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취임하면서 밝힌 청사진도 중화민족의 부흥이었다. 중국적 사회주의라는 오랜 변형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맑스주의는 포장지로서의 마지막 쓰임새마저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난주에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중국의 꿈이었다. 역사 강국은 역사의 반복을 꿈꾸기 마련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지금의 중국이 청조 강희제 초년 같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적어도 100년은 옹정, 건륭의 성세가 열릴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가 중국인들의 잠재의식 속에 폭넓게 깔려 있다. 일시적인 부침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전망과 투자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지난 100여 년간 중국의 꿈을 접어야 했던 요인은 무엇일까? 서구열강에 압도당했던 과학기술의 열세가 바로 그 원인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이미 대답이 나와 있다. 철강과 조선을 비롯한 중공업의 기초분야는 물론이고 군수산업의 초석이자 핵심인 항공우주산업, 거대국가의 필수 신경망인 고속철과 정보통신망, 에너지와 환경산업, 나아가 로봇산업, 3D프린터 등 미래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술 혁신분야에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가 계속될 것이다.

2013.04.01 유원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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