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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하고 머리 엉뚱한 데 써"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의 관료사회개혁론  

미디어다음 / 선대인기자  






“우리 관료들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에는 머리를 많이 쓰고, 돈 안 들고 국민들 고생 안 시키는 데는 늦습니다. 머리들을 이상한 데다 씁니다. 돈 안 들고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합니다.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들어선 노태우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17년동안 관료사회의 개혁은 제대로 못했습니다. 관료사회를 개혁하지 못하면 외환위기와 카드채 사태에 이은 제 3의 위기를 언제든 맞게 될 수 있습니다."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관료사회 개혁론’을 시종일관 매우 강하게 제기했다. 김 위원은 김대중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기획수석,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재벌 개혁 등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은행 그의 사무실에서 약 2시간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은 “관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은 관이 결정한다’는 일제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문제”라며 “직선 대통령들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이 와도 경제로 성공한 대통령 되기는 어렵다”며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처음 2년은 관료 얘기를 많이 안 듣고 잘 하다가 3년째부터 관료들 얘기를 많이 듣기 시작해 임기가 끝날 때에는 매번 경제에서 높은 평가를 못 받았다”고 지적했다.

김위원은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로 부패 척결과 관료사회의 개혁을 꼽았다. 그는 “특히 공공부문의 부패를 현저하게 낮춰야 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과 자동차를 만들면서 부패 문제는 왜 아프리카 나라와 어깨를 견주느냐”고 개탄했다. 그는 또 예산을 수조 원 절감하는 효과를 내는 최저가낙찰제 확대시행 유보나 정치권의 정치자금법 개정 시도를 예로 들며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났는데 부패세력이 점점 활개 치는 방향으로 간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현재 또는 장래의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인데 관료들이 치밀한 검토 없이 매우 단기적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니 지방공항 등 수요가 많이 없는 사회 인프라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관료들이 이런 불필요한 사업들이 없으면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5조~10조원씩 들어가는 사업의 계획을 밤을 새서 만든다”며 “일본의 10여년 장기 침체가 바로 이 같은 관료주의와 부패, 재정적자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은 더 이상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악을 준다”며 “그 증거가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위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 주도의 경제정책이 경제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 그는 또 고시제도와 순환보직제가 관료들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하고 “시장에서도 전문가를 구해야 제3의 위기를 겪을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우리 경제가 수출 부문에서는 호조를 보이면서도 내수가 침체한 원인으로 카드 채 사태와 부동산 투기를 들고 이에 대해서도 정책 당국자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거품으로 단기 경제성장율은 높였지만 이 때문에 생긴 카드 빚과 부동산 대출로 소비가 현저히 줄어 내수가 침체에 빠지도록 했다는 것. 그는 “재경부나 건교부가 부동산 값이 뛸 때 적절한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갔다”며 “공무원들이 맡은 분야에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투기를 키워서라도 경기를 살리려 하는 수십 년 된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부동산 투기 문제와 관련, “잠재적으로 카드채 사태보다 더 걱정되는 분야”라며 “일본이 부동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10년 이상 잃어버렸는데 우리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선진국 꿈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국내 부동산 값이 지금 침체를 겪고 있지만 이미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에 와 있다”며 “열 살 난 아이가 스무 살 장정이 져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수 년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카드 거품으로 2년 덕 본 것 2년 이상 걸려 비용 지불"

  
-현재 한국경제가 어떤 상황인가. 97년 이전에 비하면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는 괜찮고, 97년 외환위기 직후보다도 좋다. 고쳐야 할 부분은 많지만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작년에 수출이 많이 돼서 경상수지 흑자가 280억 달러 전후가 됐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은 예외 없이 다 잘 돼 수출이 30%정도 증가했다. 세계 경제가 좋아지는 것을 중국 다음으로 2,3번째로 잘 활용한 나라다. 그렇게 잘한 것을 신문에서 제대로 보도 안 한다.

그렇게 수출을 잘 하는 데 기여한 기업들은 국민들이 굉장히 칭찬해야 한다. 한국을 외국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환율이다. 지난해 우리는 대외통화 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외환보유액이 500억 달러 늘어났다. 그렇게 늘려도 연초 환율이 1180원대에서 1030원대로 연초에 비해 13%가량 절상됐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강하다는 거다. 대외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해였다.

-수출은 잘 되지만 내수경기는 침체라고 아우성이다. 왜 수출 호조가 내수경기로는 연결이 안 되나.
지난해 수출이 달러 기준으로 30% 가까이 증가했고, 전체 경제성장률도 4.6~4.8% 정도로 추정된다. 2,3년 전까지 우리 잠재성장률을 5% 내외로 봤으니 우리 능력 정도를 한 거다. 어느 부문은 세계에서 2,3등 할 정도로 성과를 냈지만 어떤 부문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교육, 유통,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서비스산업이 국내총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제조업은 30% 정도를 차지한다. 제조업 수출이 잘 돼 10% 이상 상승해도 서비스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체 성장률은 4% 후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럼 왜 서비스 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느냐.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다. 우리 정부 관료들이 제 발이 저린지 이것을 잘 얘기 안 해서 국민들도 잘 모른다. 그게 2001~2002년에 있었던 신용카드 거품이 2003년 초부터 꺼지면서 일어난 내수침체 효과다. 97년 외환위기로 우리 경제가 7년 이상을 잃어버렸는데 신용카드 거품 때문에 우리 경제가 다시 2년 이상을 잃어버렸다. 신용카드로 한 군데서 몇 천만원씩 빌려서 쓸 때는 좋았다. 그런데 카드 돌려막기가 계속되나. 카드채 거품이 2002년말에 시작돼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빚 갚기에 바빠진 것이다. 여행도, 외식도 못하고 학원도 덜 보내게 됐다. 그런 현상이 지난 연말까지 계속되고 있다. 만약 작년에 민간 소비가 90년대처럼 5%만 증가했으면 우리 경제의 지난해 성장률은 8% 가까이 된다.

2002년 상반기까지 당시 정책자들이 신용카드 붐으로 인한 소비 경기 붐에 도취돼 안이했다. 한편으로는 당장의 경제성적표에 너무 욕심을 냈다. 이 때문에 2002년에 경제 성장률이 7%나 돼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 해 대만, 싱가폴 등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다. 우리는 카드 거품으로 인한 내수가 좋아서 그 때는 덕을 본 것이다. 이제 그 비용을 2003년부터 지불하고 있다. 2년 덕 본 것을 2년간 비용 지불해 본전을 맞추면 좋은데 사실은 빚을 갚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작년, 재작년은 소비가 마이너스 성장했고, 올해는 소비가 플러스로 반전하겠지만 미미할 것이다. 우리 수출 증가율이 동남아국가들보다 더 높은데도 전체 성장율이 더 낮은 것은 카드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다.


"카드 사태 관련 모두 책임졌는데 정부만 책임 안 져"
"사회 민주화됐지만 관료사회 개혁은 한 번도 못해"
"고시와 보직순환제로는 관료 전문성 못 키워"

  
-DJ정부가 경기 침체를 피하기 위한 탈출구를 찾는데 집착했던 것 같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던 터라 카드채 거품을 의도적으로 띄웠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궁금하다. 현 정부 잘못은 분명히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는데도 잘못된 정책 실패사례에 대해 왜 분석을 안 하나. 소 잃고 왜 외양간도 안 고치나. 비슷한 방식으로 제1, 제 2, 제 3의 위기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일이 생기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는데도 걸림돌이 된다. 외환위기로 7년, 카드위기로 2년, 최소 9년 동안 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제 3의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외환위기나 신용카드 위기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갚을 능력을 넘어서 카드로 불필요한 것을 산 것은 당사자에게 우선 잘못이 있다. 두 번째는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 카드 발급하고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해준 신용카드사들의 잘못도 있다. 세 번째는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금융감독기구가 제대로 했다면 카드 남발을 억제할 수도 있고 중간에라도 카드사들을 검사해서 리스크와 신용 관리를 하는지 확인했어야 했다.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은 낮은 수준이다. 금융감독기구가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독립성이 없어서 정부 눈치를 보느라 못했다면 영향을 미친 재정경제부나 청와대가 잘못한 것이다. 카드사태를 보면 인도네시아보다 경제정책을 못하는 나라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다.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2년 이상 고생하는 결과가 생겼다. 그런데 국민들이 마음이 너무 좋은 것인가. 그런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채무자들은 빚을 상환하면서 책임지고, 신용불량자는 여러 가지 혹독한 고생하면서 책임지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합병되거나 인수되면서 일부라도 책임을 졌다. 일부 대주주가 책임을 졌느냐 하는 문제는 남아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제한을 카드사에 권고한 것이 2002년 하반기였는데 너무 늦었다. 1년 반이나 2년 전에 내려야 했던 결정을 너무 급브레이크를 밟으니 신용카드 거품이 확 빠지면서 우리가 고생하는 것이다.

금감위가 독립성이 없어 적시에 제동을 못 걸었다면 금감위, 금감원에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우리 관료들은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에는 머리를 많이 쓰고, 돈 안 들고 국민들 고생 안 시키는 것은 늦다. 머리들을 이상한 데다가 쓴다. 돈 안 들고 국민 편한 개혁은 안 한다. 노태우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17년동안 관료사회의 개혁은 제대로 못했다. 관료사회의 개혁을 못하면 제 3의 위기를 맞게 된다.

-관료사회의 개혁을 언급했지만 우리 경제가 질적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등 공공부문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박정희식 패러다임은 더 이상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악을 준다. 그 증거가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위기라고 본다. 그래서 97년 외환위기 직후에 재벌, 금융, 노사, 공공 등 4대 개혁을 했다. 재벌개혁을 한다는 건 많이 나왔고 금융개혁도 일반 금융기관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는 이뤄졌다. 노동부문의 유연성도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정부 부문은 아직 별로 개혁되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교훈이 뭔가. 97년 위기상황에 접근할 때 몇 달 전에 미리 대비했다면 외환위기까지는 안 갔을 것이다. 당시 중요한 자리에 전문가가 없었던 탓이다. 61년 이후 박정희식 경제개발 방식은 큰 방향을 청와대에서 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관련 부처에 맡기고 시장을 끌어갔다. 그 뒤에 전두환 씨가 독재하면서 같은 패러다임으로 했다. 80년대 말 대기업 쓰러질 때도 다른 대기업이 빚까지 같이 인수하게 해 넘기는 식으로 필요한 개혁을 안 하다가 결국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제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재벌에 의존한 경제 정책은 DJ정권 때부터 어느 정도 바뀌었다. 하지만 관료 중심의 정책생산은 박정희 정권 때보다 더 의존도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 KDI나 대외경제연구원 등 정부 출연 연구소의 독립성이 과거보다 더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관료들의 정책이 결정된 뒤 그걸 합리하화는 연구만 한다면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럼 관료들이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관료들은 20대 후반에 행정고시를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회계사나 사시 출신들은 합격자 수가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합격한 뒤에도 공부를 많이 한다. 그러나 행시 출신 공무원들은 여전히 많이 안 뽑는데다 순환보직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하다. 개방된 시장경제에서는 경제 정책 공무원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시장에서도 전문가를 구해야 제 3의 위기를 겪을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현재의 관료 선발, 승진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 순혈주의에 빠져 20년 전에 시험으로 뽑은 사람을 가지고 체계적인 훈련 없이 현재의 복잡한 문제에 처방을 내리라는 것은 그 분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너무 무리다. 미국은 고사하고 동남아 국가들이 하는 인력 충원 방식에도 못 미친다. 고시제도는 없앴으면 좋겠다. 어느 나라에도 고시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일본도 부동산 버블로 고생했는데 결국 관료들의 정책 판단 잘못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율성 없이 우물 안 개구리 모양으로 생활하면 처지게 돼 있다. 미국에서는 관료 생활을 관두고 민간부문에 진출하면 10배의 연봉을 받는다. 우리는 그런 게 안 되니 국장은 차관, 차관은 장관, 장관은 대통령 눈치를 보니 소신껏 정책을 밀지를 못한다. 관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은 관이 결정한다’는 일제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문제다. 직선 대통령들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깝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이 와도 경제로 성공한 대통령 되기는 어렵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처음 2년은 다 잘한다. 처음 2년은 관료 얘기를 많이 안 듣다가 3년째부터 관료들 얘기를 많이 듣기 시작해 끝날 때는 매번 경제에서 높은 평가를 별로 못 받았다.

-정부정책이 잘못됐을 때 왜 제대로 된 평가가 없나.
(잘못을 저지른) 같은 사람에게 평가하라고 하니 그런 거다. 벤처정책이 잘못됐을 때도, 신용카드 사태가 잘못됐을 때도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 변화 없는 이유가 뭔가. 정책 실패를 거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통령, 관료 문제 심각성 몰라"
"국내 부동산 가격 국민소득 3만불 수준"
"투기 키워서라도 경기 살리려는 관료 문화 없어져야"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아는데 관료들에 휘둘려 개혁을 못하는 건가.
모르고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경제정책, 사회정책을 근시안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 과거 잘못을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그런 건 돈 드는 것이 아니다. 금방 된다. 고시 없애는데 돈 드나. 능력 있는 사람을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뽑도록 활성화해야 한다. 사람 뽑는 것은 좀 더 수공업적으로 해야지 고시로 머리 좋다는 것만 보고 뽑는 것은 안 된다. 사람 뽑는데 좀더 성의를 더해야 한다.

-아까 신용카드 거품 붕괴가 내수 침체에 미친 영향을 언급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품이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더 크다고 하는데. 분명히 그것도 중요한 원인이고, 사실은 잠재적으로 카드채 사태보다 더 걱정되는 분야다. 일본이 부동산 문제 제대로 대처 못해 10년 이상 잃어버렸는데 우리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선진국 꿈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부동산 값이 서울 강남을 보면 국민소득 3만달러 수준에 와 있다. 그런 나라들의 가장 요지 가격에 와 있다. 예컨대 미국 LA의 헐리우드 톱스타들이 사는 집들이 200만~300만 달러까지 가는지 모르겠는데 강남에는 20억,30억 가는 데가 있지 않나. 평수로 따지면 더 심하지. 거기에는 2000평, 3000평 하는 게 100만~200만 달러 하는데 우리는 100평, 200평 짜리가 20억~30억 하니 말이 되나.

10살 정도 아이가 스무살 장정이 져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수 년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이 결혼한 후에 월급 저축해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길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을 집을 마련하기 위해 살거나 집을 못 마련하겠으니 전세나 살겠다고 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출 많이 받은 가구는 빚 갚느라고 소비를 많이 줄였다. 도시가구 근로자를 5개 계층으로 나눠 원리금 상환 부담률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보면 오히려 고소득 근로자의 원리금 상환비율이 더 높다. 이 사람들이 카드빚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 테고 부동산 대출하고 빚 갚느라고 그랬을 것 아니냐. 지금 근로계층은 저소득이든, 고소득이든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돈을 못 쓰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결국 부동산 투기 사태와 관련해서도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 아닌가.
80년대 후반 부동산 값이 폭등할 때 도입된 토지초과이득세 등 부동산 투기 억제 수단이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많이 없어졌다. 택지소유 상한제 등은 위헌 결정을 안 받았는데도 건설교통부가 갈수록 대상을 점점 축소시켜 몇 년 전부터는 완전히 없어졌다. 요즘 재건축이 문제 되니 거기에 한해 재도입한다고 하는 정도지. 부동산 투기 억제 수단을 하나하나 없애가도 우리 행정은 잘못된 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누가 없앴는지 알 수도 없다.

2001년부터 주택가격이 막 뛰지 않았나. 왜 뛰었나. 여러 요인이 있다. 2000년부터 IT붐이 빠지면서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기도 했고 금리가 싸진 것도 이유다. 정부가 90년대 초부터 아까 얘기한 투기억제 수단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파트 전매 등 투기를 조장하는 수단을 많이 도입한 것도 이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재경부나 건교부가 부동산 값 뛸 때 적절한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갔다. 공무원들이 맡은 분야에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투기를 키워서라도 경기를 살리려 하는 수십 년 된 관행에서 나온 것이다. 외환위기 겪으면서 없어졌어야 하는데 그게 계속 온존해왔다. 2001년 이후 부동산 값이 많이 폭등했을 때 정책타이밍을 놓쳤다. 2001년에 근본대책이 나왔어야 했는데 야금야금 정책을 내놓다가 2003년 10.29대책으로 결국 투기붐을 막았다. 시기를 놓친 것이나 대처하는 꼴이 카드채 사태와 꼭 닮았다.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아파트를 합쳐 토지의 부동산 가치가 대략 4000조~4500조원 정도 된다. 이게 15% 이상 떨어진다고 하면 모든 금융기관에서 만기 때마다 최대한 주택담보 대출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더구나 경매가는 살 사람이 없어 10억 짜리가 1억원도 될 수 있다. LTV(Loan to value. 부동산 가격 대비 대출한도)를 2002년에 거의 규제 안 해 은행이 이 비율을 70%까지 내렸을 것이다. 60%까지만 내렸더라도 15% 정도 떨어지는 사태가 생기면 경매가는 폭락한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경착륙은 안 된다. 아무리 거품이 싫어도 그건 안 된다. 경착륙은 안 되지만 현 수준 유지는 안 된다는데도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조금씩 하락해야 하는데 지난 해 물가 상승률이 3.6% 이므로 실질 아파트 가격은 5% 정도 내린 것이다. 일부 강남 지역에서 30~40%의 거품이 있다면 작년 수준으로 간다면 최소한 5년 정도는 가야 한다. 그 무거운 짐을 어찌됐던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건설경기는 냉각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냉각은 감수해야 한다.


"선진국 진입 위해 부패 척결과 관료 문화 개혁 필수"
"세계 최고 수준 휴대폰 만들면서 부패는 왜 후진국 수준인가"
"관료들 자리 보전용 각종 사업 밤 새서 만들어"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뭔가.
환율 추세나 경제 성장률, 물가 상승률 전망 등을 종합하면 2008년에 2만 달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선진국이 되는 과정이다. 지금은 2만 달러라고 반드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수준이 덩치에 비해 너무 떨어져 있으면 2만 달러가 다시 1만5000달러로, 1만 달러로 갈 수도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선 정부가 할 일이 부패 척결이다. 특히 공공부문의 부패를 현저하게 낮춰야 한다. 부패문제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올해 노대통령 신년사까지 빠진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투명성 지수는 10점 만점에 4.5점을 맴도니 아프리카 우간다 수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과 자동차를 만들면서 부패 문제는 왜 아프리카 나라와 어깨를 견주나.

정부가 올해 확대시행을 약속했던 최저가낙찰제를 지난해 말 슬그머니 또 다시 유보했다. 최저가낙찰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도입할 경우 예산을 수조원이나 절감하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정부가 전력을 다해 이를 미루고 있다. 언론까지 이를 돕고 있다. 국회는 1년도 안 된 정치자금법을 과거로 돌리려 한다.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났는데 부패세력이 점점 활개 치는 방향으로 간다. 이런 식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현재 또는 장래의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관료들이 정부 지출을 늘릴 때 치밀한 검토 없이 매우 단기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지방공항 등 수요가 많이 없는 사회 인프라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것이다. 그게 일본형이다. 일본형 불황은 관료주의와 부패, 재정적자의 결과물이다. 관료들이 이런 불필요한 사업들이 없으면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5조~10조원씩 들어가는 사업의 계획을 밤을 새서 만든다.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패수준을 낮춰야 한다. 이미 우리 국민의 담세율은 선진국 수준에 와 있는데 부패는 아직 아프리카 국가 수준이다.

경제(經濟) 에서 경은 ‘곧이 곧대로’라는 뜻이 있다. 그 반대는 제멋대로 하는 거다. 제멋대로 하는 것은 권세 권(權) 자다. 경제에서 제일 좋은 것은 곧이 곧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 법과 규칙에 따라 물 흐르듯이 사람들이 편하게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법(法)도 물 흐르듯 하게 하는 거다. 법치가 되면 경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 부패 수준이 높고 법과 관련해 흥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법치가 문란하다. ‘차떼기’도 사면되고 하는 것도 법치가 문란한 것이다. 대통령이 사면 한 번도 안 하면 법치가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부패가 적발돼도 법이 느슨하게 적용돼서 재벌 총수와 국회의원이 법을 우습게 아는 것이 경제를 아주 나쁘게 한다. 4700만이 경제행위를 하는데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경제성적표가 좌우된다. 열심히 하는 것을 가로막는 게 부패다. 직장에 들어가서 승진할 때도 돈 주고 공무원 상대로 뇌물 잘 주고 술 잘 먹고 하는 사회가 어떻게 선진사회가 되겠나.

두 번째는 낡은 관료시스템의 개혁이다. 아까 말한대로 고시 없애고 공무원에게 충분한 봉급을 주도록 해서 유능한 사람이 시장에서도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럼 정부 안에만 관료주의가 있나. 재벌이 됐든 어디든 대학 졸업한 뒤에 뽑은 사람들만으로 승진하도록 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 아래서는 비정부기구라도 관료주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데서는 고객이나 시장을 중심으로 생각 않고 인사권자만 보게 된다. 심지어 축구팀에도 관료문화가 있어서 히딩크가 그걸 깨려고 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 전반에 히딩크가 필요하다. 관료주의를 안 깨면 선진국이 안 된다. 일본도 제조업 선진국이 됐지만 관료주의가 만들어낸 부동산 거품 붕괴로 10년을 잃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상시로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고 정부가 잘못할 때 제대로 하라고 지적하는 게 국민이 할 일이다.



댓글
2005.02.14 01:49:04
Ambivalent
익게에도 3줄요약 시스템을 도입하는게 어떨까요?
댓글
2005.02.14 02:19:33
피리짱
좀이 아니라 많이 긴 듯..ㅜ_ㅜ
댓글
2005.02.14 04:26:38
데이트쟁이
스크롤 압박;;
삭제 수정 댓글
2005.02.14 05:26:26
흠냥
좋은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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