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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에겐(고귀함에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따른다’로 해석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미리 말하자면, 아예 기대하지 않는 편이 더 속 편하다. 세계 어디에서도 ‘노블레스(귀족)’는 결코 자신에게 스스로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견제와 비판의 시각이 노블레스 자신을 되돌아보도록 작용할 때 그 가능성이 열린다.

가령 우리가 전범처럼 예를 들곤 하는 유럽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 민중의 비판과 견제를 받아들이는 편이 민중 지배를 더욱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 즉, 민중의 견제와 비판이 사회 상층에게 자기 통제를 요구했고, 그것이 그들의 ‘고귀함’을 담보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민중의 비판, 견제가 오히려 노블레스들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사회귀족들에게선 우선 ‘고귀함’ 자체를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오랜 동안 색깔론과 지역주의를 방패 삼아 민중의 견제와 비판을 피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연고주의와 각종 유착을 통하여 그들의 성채를 더욱 견고히 만들었다. 견제, 비판으로부터 벗어난 그들은 오직 뻔뻔함과 오만함으로 무장했고, 그것을 그들의 자격조건인 양 자랑하게 되었다. 낙선낙천 운동을 수용하기엔 그들은 이미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차떼기를 하고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하지만, 그 사실이 드러난 것을 집권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게 그들의 진심에 더 가깝다.


어느 사회든 엘리트층은 양성되고 형성된다. 문제는 그들에게 엘리트로서의 능력이 있는가와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는가에 있다. 민중의 비판과 견제를 수용한 엘리트들이 그에 상응한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보여줄 때, 비로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능한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아직도 색깔론과 지역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민중의 견제, 비판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함께, 물신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더욱 기대할 수 없다. 이 땅의 엘리트들은 물신에 찌든 사회구성원들과 똑같이 존재의 고귀함보다 오직 소유물을 추구한다. 엘리트로서의 능력은 소유물을 다른 구성원보다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에 의해 평가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가치가 오직 소유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자기성찰의 상실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하여, 국회만 이전투구의 장인 게 아니다. 사회 전체가 온통 소유물 확보를 위한 이전투구의 현장이 되었다.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처럼, 소유물 확보를 위해 인간성을 물신에 팔아버린 군상들…. 연구비를 횡령하는 대학교수, 교육감 선거를 둘러싸고 벌인 교장, 교감들의 추잡한 행각, 사회 공공성을 확충해야 하는 인사들이 벌이는 부패와 비리들…. 뉴스 시간마다 연일 만나야 하는 부패, 비리, 부정, 타살, 자살, 강도, 유괴 사건들…. 이 사회는 추악할 뿐 아니라 무서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10’을 말하는 ‘개혁’의 초라함과 경박함이란! 그것이 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 말해주는 개혁의 독선적 성격도 문제지만, 거기에서 이미 새 시대를 바라는 열망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위에 국민소득 2만달러를 말하고 있다. 2만 달러 주장은 분배정책의 실종과 불평등한 노사관계의 고착만을 뜻하지 않는다. ‘개혁’이 이미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투항했다는 선언에서 멀지 않은 것이다. 2만 달러를 향한 경쟁과 효율 앞에서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대한 성찰은 고무되기 어렵다.


존재의 고귀함을 추구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사회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긴장하지 않는 사회, 자기 성숙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회, 우리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아직 요원하다.



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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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8 11: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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