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70,188
강영우(펌)
2004.03.07 18:15:43
3188
배움터
Name      강영우  (2004-03-07 01:52:37, Hit : 83, Vote : 11)


Subject  
   아이티와 세계화


아이티의 대통령이었던 아리스티드가 마침내 망명의 길에 올랐습니다.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정치를 끝냈고 신부의 몸에서 대통령에 올랐던 그도 내전에 휩싸이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타국에 몸을 맡기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권기간중에 쿠테타로 실각한 후 다시 재기하였으나 다시금 반란군에 의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게 되는군요.

아리스티드가 비록 뒤발리에의 독재정치를 끝내는데 큰 기여를 하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엇갈리는 듯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가 미국내 마약조직과 연관되었다는 설을 공공연하게 흘리기도 하구요. 아리스티드는 자신이 미군에 의해 거의 반납치 수준으로 망명에 올랐다고 주장하기 도합니다. 아이티가 워낙 작은 나라이다 보니 판단하기에 충분한 정보도 없습니다. 아리스티드의 정치적 인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터라, 그의 실각이 그리 충격적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아리스티드의 이번 실각은 스스로 자초한 바가 큽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쿠테타에 의해 실각하고 재 집권하는 과정에서 그는 군대를 해산했습니다. 군대가 해산된 뒤에 아이티를 유지하던 공권력은 5000여명의 경찰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그나마 무기라고는 곤봉 등이 전분인 듯 하더군요. 아리스티드는 부족한 공권력을 갱단들에게서 보충하였습니다. 아이티는 친 아리스티드의 갱단과 반 아리스티드의 갱단으로 나뉘어졌고, 이번 내전도 이 두 갱단의 분쟁에서 발전했다고 합니다. 상당히 황당하고 코믹한 이야기지요.

아이티는 과거의 설탕과 커피의 나라였습니다. 설탕이 세계 교역의 중심에 있었을 무렵, 유럽의 상류층이 설탕의 탈콤함에 빠져있었을때 이 카리브해의 섬나라를 설탕 생산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이티는 진정한 세계무역, 세계화의 산물이었습니다. 남아시아의 작물인 사탕수수를 아프리카 출신들의 흑인 노예노동을 이용하여,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에서 재배하여 유럽(특히 프랑스)의 상류층들의 애호품으로 만드는 전세계적 생산과 무역 그리고 소비의 네트워크에 의해 탄생한 산물이었습니다. 사탕수수의 열풍이 끝나자 커피의 열풍이 아이티를 몰아쳤습니다. 사탕이후에 커피에 중독된 미국과 유럽인들을 위해 아이티는 훌륭한 커피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아이티는 최초로 민중해방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전 최초의 흑인 노예해방전쟁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최초의 흑인공화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성공담은 여기까지입니다. 혁명 이후에 프랑스인들이 소유했던 거대한 커피농장은 해체되어 흑인 농부들에게 고루 분배되었지만, 세계자본은 당돌한 흑인들에게서 더 이상 커피 구매를 중단해 버립니다. 아이티에서 브라질로 주 커피 생산국이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세계자본에 의해 버림받은 이 조그마한 섬나라는 이후 카리브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합니다. 그 이후로 불안한 정치가 계속되고 급기야는 악명 높았던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시대를 경험합니다. 이 독재를 무너뜨리고 아리스티드의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올해 초 그가 또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됨으로써 이 작은 나라의 앞날은 다시금 불투명해 지고 말았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반란의 주축세력이 두발리에 부자 통치기에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라고 합니다. 아이티에서 민주주의는 확실히 후퇴했습니다.

이번 아이티 사태는 세계화가 언제나 모든 참가자들에게 이익을 주지는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는 풍경을 단순화 시킨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티나 쿠바등의 카리브해 국가들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등의 동남아 국가들이 17세기 18세기 세계화의 시대에 겪었던 일들입니다. 열대우림과 정글, 야자수 숲으로 구성되었던 이들 땅들은 세계무역 하에서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화 됩니다. 다양했던 국토가 사탕수수 농장으로 풍경이 단순화된 것이지요. 하와이로 멕시코로 우리의 선조들이 거의 노예수준의 이민을 떠나게 된 것도 대부분이 이 사탕수수 열풍 때문이었습니다. 세계화는 80년대 이후에 대처와 레이건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 백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계화는 선진화된 유럽과 미국인들에게는 달콤함을, 제국주의 자본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주었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에게는 고향을 떠난 노예생활을 선사했고, 사탕수수를 생산했던 대부분의 중남미와 남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풍경의 단순화를 선물했습니다.

풍경의 단순화는 다양성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풍경이 단순화된 사탕수수 생산국에서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이 열대우림의 파괴만을 의미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각각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작물의 다양성과 산업의 다양성을 파괴했습니다. 각 국가들이 생산해 냈던 다양한 작물들은 영원히 소실되었고, 이후로 결코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사탕수수의 열풍이 끝났을 때, 커피의 광란이 진정되었을 때, 고무 생산을 브라질이 독점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 국가들은 세계자본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았고, 그 결과는 아이티에서 확인되듯이 200년간의 가난과 정정불안 그리고 독재와 이를 통한 인권유린이었습니다. 한번 파괴된 다양성과 산업의 가능성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국경이동은 무제한으로 허용되고 노동력에 대한 이동은 철저하게 국가라는 철망에 갖혀있는 세계화시대에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세계화가 풍경을 단순화한다는 말은 현재에도 유용합니다. 몇일 전 국회에서 칠레와의 FTA를 인준했습니다. 양국간의 이 세계화는 양국의 풍경을 조금 더 단순화 시킬 것입니다. 칠레에는 보다 많은 포도덩쿨이 심어질 것이고, 한국에는 조금 더 많은 공장들이 지어질 것입니다. 칠레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될 것이고 한국에서는 많은 농부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양국간의 세계화된 교역이 아주 짧은 기간을 생각하면 양국에 이득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무래도 도태되는 쪽은 각 국가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년에서 10년간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20년에서 30년, 100년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세계화의 그간 경험입니다. 우리를 생각해보면, 이 세계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농업적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었던 엄청난 가능성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조금은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미래에는 엄청난 가치를 가질 수 있을 지 모를 그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농업적 다양성의 포기는 생물학적 다양성의 포기로 이어져 전 지구적인 환경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저의 더 큰 우려이기는 합니다만, 경제적인 측면을 볼때에도 꼭 현명한 선택이 될 수 많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다양성의 포기는 한 사회와 국가를 되돌릴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티가 1800년대 이후로 겪었던 바로 그 구렁텅이로 말입니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정부가 전 정부 이래로 계속 추구하는 세계화는 우리 사회의 농업적인 다양성과 산업적인 다양성을 파괴하고 보다 획일화된 단순화된 경제 시스템, 사회 시스템을 창출할 것입니다. 이는 현실에서 조금 높은 경제효율과 조금 높은 자본 수익을 가져 다 줄 수 있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의 가능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화는 전 지구적인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세계화는 오히려 제3세계에 절망을 가져다 준 경우가 훨씬더 많았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이글은 아이티의 정국과 최근에 읽은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을 밑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특히 “설탕…”은 꽤 좋은 책이며, 이 글을 접하신 분들에게는 추천해 드립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04.03.07 20:49:19
희희
제목만 보고 아이티가 IT 인줄 알았소 -_-;;;;
삭제 수정 댓글
2004.03.08 04:01:45
세발이
요즘 시사상식 출제빈도 1위 국가 아이티.....반드시 외워두시오..ㅎㅎ..특히 4학년들
삭제 수정 댓글
2004.03.08 04:06:01
지나가다
좋은 내용! 추천!
삭제 수정 댓글
2004.03.08 04:11:39
쩝..
세발이/ 그저 시사 상식에 나온다고 외워두라는 당신의 말. 참으로 씁쓸합니다.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외운다구요?
물론 당신이 나빠서 그런게 아니지요. 이 사회의 구조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
번호
배움터
제목
글쓴이
공지 공통  경희 광장 이용안내 1
쿠플_알리미
2015-10-28 1005842
공지 공통  홍보글 무통보 이동처리 합니다.
KHUPLAZA
2014-05-01 1034621
270068   언제부터 이거 다시 살아났나요? 6
단군
2004-03-07 2349
270067   이윤선 5
..
2004-03-07 2917
270066   낼 심심하신분덜... 7
혜인사랑
2004-03-07 3141
270065   어이없는이야길지도모르지만(이영애) 15
강태공
2004-03-07 5392
  아이티와 세계화 4
강영우(펌)
2004-03-07 3188
270063   학교 게시판 글 안읽어지네.. 4
ㅇㅇ
2004-03-07 2471
270062   하고 싶어도 하지마라. 3
바람서리
2004-03-08 3085
270061   전정분들께 부탁말씀! 6
요요
2004-03-08 2945
270060   답글은 10장이상에 대처하는 방법... 7
액숀가면
2004-03-08 2783
270059   요즘 편입학원에... 18
흠흠...
2004-03-08 3021
270058   학교내 버스정류장 1
흐미
2004-03-08 2754
270057   무선설비기사~ 2
세발이
2004-03-08 2172
270056   왕따들은 평소에 어디 있나여????? 17
복학
2004-03-09 3219
270055   테니스 같이 치실 분..^^ 3
혜인사랑
2004-03-09 2176
270054   학교에 영어권 나라에서 온학생들? 2
혜인사랑
2004-03-09 2607
270053   신갈야간학교 교사 모집 1
한규일
2004-03-09 4342
270052   유밀레 성형전 면상 17
뜨아~~~
2004-03-09 3620
270051   이런 말들이 왜 게시판에. 2
grayowl
2004-03-09 2923
270050   한화, 경희의료원 병원건립 삐끄덕 5
미스터리
2004-03-09 2887
270049   보수목회자 중심 기독교정당 탄생 9
김훈
2004-03-09 2781
270048   웹상에서 노래하나끝나면 브라우저 멈춰버려요. Help Me ㅠ ㅠ 1
A4
2004-03-09 2640
270047   Jamiroquai-Virtual Insanity 2
8con
2004-03-09 2331
270046   반파장 안테나 3
안테나
2004-03-09 3350
270045   서울 팝 오케스트라 한국 비하 발언 물의 1
chungsan
2004-03-09 2507
270044   orkut 쓰시는 님들... 2
심시마군
2004-03-09 1778
270043   서울캠] 중고 냉장고, 세탁기 삽니다!!!
우유죠리퐁
2004-03-10 2284
270042   (설문조사)경희대에서 젤 맘에 드는건물&맘에 안드는 건물 9
ㅡㅡa
2004-03-10 2391
270041   여학생휴게실이 있는 모 단대학생회의 단대교무실에 대한 요구 6
회기동파전집
2004-03-10 2105
270040   금주.. 3
8con
2004-03-10 2027
270039   오늘은 조금일찍.. 14
망탱
2004-03-10 2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