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30

▣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주보 공동기획고전의 사계  

 

공자는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뚱딴지같은 이야기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공자는 그저 말을 했을 뿐이고 한번 내뱉은 그 말은 여느 말처럼 공중에 흩어져 사라져버렸다아마도 공자는 자신의 말이 후세에 전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그의 말을 기록한 논어는 당대에 엮인 것이 아니라 그의 사후 제자들의 기억 속에서 두 세대 동안을 견디다가 제자의 제자 대에 이르러 비로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기록된 내용을 읽어보면 참으로 이상하다난생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칠 만큼 재미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슴 불타는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도 없기 때문이다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를 테면 이런 내용이다.


마구간에 불이 났다공자가 퇴근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다쳤느냐?” 그리곤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게 끝이다도대체 제자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을까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말()과 사람이 어떤 값으로 거래되었는지 알아야 한다사람값보다 말 값이 더 비쌌다는 이야기다사람보다 말의 값어치에 더 관심을 두었던 세상에서그 반대로 행동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의미는 자못 크리라제나라의 재상 안영이 현인 월석보를 말 한 필과 바꿔 온 이야기라든가진나라 목공이 양을 대가로 주고 노예로 끌려가던 백리해를 데리고 온 일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까닭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값어치가 있다고 여긴 것보다 사람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공자가 말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평범하지만 사실 세상의 가치 서열을 송두리째 뒤엎는 놀라운 이야기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값어치가 있다고 여긴 것보다 사람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공자가 말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평범하지만 사실 세상의 가치 서열을 송두리째 뒤엎는 놀라운 이야기인 것이다.


논어는 새 책이 아니다. 2,5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견뎌 온 헌책 중의 헌책이다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지속되는 것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다책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어떤 책의 존속여부를 가늠하는 데 시간의 흐름보다 더 공정한 심판관이 있을까논어는 그 긴 세월 동안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읽혀왔다순자는 논어의 편제를 따라 자신의 저술을 남겼고 사마천은 논어의 구절로 열전을 시작하고 마무리했으며책 살 돈이 없어 서점에서 책을 통째로 외웠다는 한나라의 왕충은 논어를 읽은 뒤 공자에게 따져 묻는 <문공편>을 남겼다그런가 하면 송나라의 재상 조보는 반부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렸다는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라는 말을 남겼다전통 시기 논어는 고전이 아닌 ()’으로 절대시됐다.


그러나 근대의 길목에서 논어는 봉건윤리의 대명사로 지목되더니급기야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비판받았다또 문화혁명 때는 공자를 반혁명분자라 비난하는가 하면 오곡을 분간치 못하고 사지를 놀리지 않는 기생충이라 했다다 맞는 말이다예나 지금이나 성현의 말씀을 팔면서 손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남의 땀으로 빚은 음식에 빌붙는 자가 많으니 말이다얼마 전 이 나라에 왔다 간 인기 지식인 슬라보예 지젝은 논어를 읽고 공자를 멍청이의 원조라 했다이 또한 맞는 말이다어떤 책도 멍청하게 읽으면 멍청한 책이 되기 마련이니.


논어를 읽고 나서 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는 다 일리가 있는 말이며 심지어 그 반대로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다만 읽지 않고서는 이들 커뮤니티에 낄 수가 없다이 시대에논어가 멍청이의 헛소리가 될 것이냐 아니면 삶의 양식이 될 것이냐는 모름지기 당신이 논어를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


2013.03.11전호근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번호
글쓴이
630 대학주보 [1601호] 9개 관련기사 총 조회수 ‘19,000여 회’ 구성원, ‘캠퍼스 통합’ 문제에 주목
대학주보
2015-12-07 7672
629 대학주보 [1601호] 제3의 중핵교과 ‘과학’ 분야 추가된다
대학주보
2015-12-07 7839
628 대학주보 [1601호] 대학주보로 본 2015, 올 한해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대학주보
2015-12-07 7075
627 대학주보 [1601호] 사설 '대학은 우리학교의 미래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대학주보
2015-12-07 6542
626 대학주보 [1600호] 사설 '전임교원 책임시수, 결국 책임감 문제다'
대학주보
2015-11-30 9434
625 대학주보 [1600호]국제캠퍼스는 왜 ‘국제’캠퍼스 인가요
대학주보
2015-11-30 10344
624 대학주보 [1600호]서울캠 총학 ‘취향저격’, 국제 ‘KHU&KHU’ 선본 당선
대학주보
2015-11-30 6900
623 대학주보 [1600호]기업 ‘사실상 분교표기’… 취준생 ‘답답’
대학주보
2015-11-30 10816
622 대학주보 [1600호]책임시수 상향 추진 … 내년부터 적용 교수의회, “절차와 소통 무시한 일방적 처사”
대학주보
2015-11-30 8980
621 대학주보 [1600호] ‘이과대학·응용과학대학’, ‘특성화’인가 ‘유사학문’인가?
대학주보
2015-11-30 8848
620 대학주보 [1570호] 사설 : 연구윤리의식 시스템 아닌 사람에서 시작된다
대학주보
2014-05-28 6596
619 대학주보 [1570호] 박, “적정등록금 시립대 수준으로” 정, “등록금 인하보다 장학금 확충”
대학주보
2014-05-28 6733
618 대학주보 [1570호] 평의원회 구성 주요 사립대와 비슷 우리대학, 타대에 비해 양호한 운영
대학주보
2014-05-28 6723
617 대학주보 [1570호] 아르바이트 ‘리걸클리닉’으로 도움받자
대학주보
2014-05-28 6344
616 대학주보 [1570호] 아르바이트생 66.9% 근로계약서 작성 안 해
대학주보
2014-05-28 6942
615 대학주보 [1569호] 사설 : 교수의회 서울지회의 시선을 경계한다
대학주보
2014-05-22 6905
614 대학주보 [1569호] 행·재정 혁신안, 본격적인 논의 시작
대학주보
2014-05-22 6588
613 대학주보 [1569호]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 ‘졸업생 평판’ 큰 폭 상승 … ‘교원당 논문’ 최저
대학주보
2014-05-22 7263
612 대학주보 [1569호] 인터뷰 : 제 1회 경희 ‘웃는 사자상’ “배운 것,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비전”
대학주보
2014-05-22 7484
611 대학주보 [1569호] 총장선출·학장임명·교수임용방식 변화 “열려있다”
대학주보
2014-05-22 6790
610 대학주보 [알림]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대학주보
2014-05-15 6517
609 대학주보 [1568호] 사설 : 대학언론의 미래, 대학의 지속가능성에 달려있다
대학주보
2014-05-15 6474
608 대학주보 [1568호] 칼럼 : 제자 취업 책임지는 ‘지도교수제’ 필요
대학주보
2014-05-15 6021
607 대학주보 [1568호] ‘온라인 대학주보’ 이용률 57%, ‘종이신문’ 36.6% 뛰어넘어
대학주보
2014-05-15 6246
606 대학주보 [1568호] 풀리지 않는 숙제 ‘소통’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대학주보
2014-05-15 6462
605 대학주보 [1568호] 신공학관, “서구 건축양식 무비판적 이식” 비효율적인 공간구조도 지적
대학주보
2014-05-15 9818
604 대학주보 [1568호] 입학정원, 80년대초 1,400명 증가로 현재 수준 호관대, 본·분교 통합도 영향 미쳐
대학주보
2014-05-15 7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