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30

기독교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중세에 철학과 과학예술의 역할은 신학의 시녀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찬미하는 보조적인 역할이었다모든 것은 기독교 교리로 설명됐고 이것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교회의 권위에 맞서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됐다.

그러나 14세기부터 이런 신중심주의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화가들은 성서와 성인들의 삶을 주제로 한 종교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조각가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몸을 조각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모습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려냄으로써 내세를 인간화시켰고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보통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신과 종교가 중심이던 세상이 인간 중심의 세계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가 바로 르네상스다.

셰익스피어(1564-1616)는 그 어느 누구보다 철저하게 신과 기독교로부터 독립을 추구했고 인간 중심주의를 완결시키려 노력했다여전히 기독교적인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쓴 다른 르네상스 작가들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종교적인 주제나 성인들을 다룬 작품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의 모든 작품은 연극무대’ 같은 현세에서 왕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층의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이다셰익스피어는 신화나 기독교에 기대지 않은 채 인간 중심의 문학 작품을 쓴 최초의 작가이자 뛰어난 문장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인간이 중심인 세계관을 작품 속에 담아낸 최고의 작가이다.

7면으로 이어짐

셰익스피어의 이런 인간 중심주의는 죽느냐 사느냐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죽음이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고 죽음에 대한 무지는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기독교는 죽은 후에도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원한 삶을 살며 현세보다 내세가 더 중요하다는 내세관으로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내세는 불안의 대상이나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현세만큼 확실한 세계로 간주되고 자살은 엄격히 금지된다.

기독교에서 삶과 죽음은 고민하거나 선택에 의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명확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어서 따르기만 하면 되는 문제이다그러므로 죽음의 문제를 신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햄릿의 물음, “죽느냐 사느냐?”는 기독교의 근간인 내세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도전적인 질문이다.이 질문은 기독교와 그 영향력이 종말을 맞았으며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이 질문에는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라는 칸트의 사페레 아우데 Sapere aude”(과감히 알려고 하라정신과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이미 내포돼 있다그러나 칸트와 니체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대신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독백을 통해 조용히우회적으로그러나 치명적으로 기독교에 철퇴를 가한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작가로서 셰익스피어가 보여주는 역량이자 문학이 지닌 고유한 힘과 매력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햄릿의 독백은 흔히 우유부단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최고의 증거로 간주된다이런 해석에 대해 햄릿과 셰익스피어는 스스로 읽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그것이 바로 죽느냐 사느냐는 질문의 메시지가 아닐까?” 반문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질문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미래의 인류에게 오히려 더 유효한 질문일지 모른다복제 기술의 발달로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될 때 미래의 인류는 셰익스피어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존 에버렛 밀레이가 햄릿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오필리아의 죽음’(1852)

2013.06.10이미선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번호
글쓴이
630 대학주보 [1518호] 농구부 김종규 선수 런던 올림픽 최종엔트리 포함
대학주보
2012-06-04 3423
629 대학주보 [알림] 대학주보 중간고사 휴간 종료 안내
대학주보
2011-11-01 3426
628 대학주보 [1507호] “반값등록금·생협 유치 어떻게 할 건가요?”
대학주보
2011-12-06 3473
627 대학주보 [1514호] 이미지 개선·캠퍼스 종합개발·학사제도 개선 특별팀 신설
대학주보
2012-05-30 3487
626 대학주보 [1498호] 튜터링제 악용 여전 … 점검 강화·의식개선 필요
대학주보
2011-09-20 3488
625 대학주보 [1518호] 양 캠퍼스 총학, 지역사회에 축제 수익금 400만 원 기부
대학주보
2012-06-08 3538
624 대학주보 [1515호] 외국인 교류 '버디프로그램' 시행
대학주보
2012-05-30 3540
623 대학주보 [1504호] 미래협약, 구성원 의견차 드러나기 시작
대학주보
2011-11-14 3554
622 대학주보 [알림] 대학주보가 지령 1500호를 맞았습니다.
대학주보
2011-10-04 3579
621 대학주보 [1515호] 캠퍼스종합개발, 4일 법인 이사회서 승인 2
대학주보
2012-05-30 3584
620 대학주보 [알림] 개강호가 발행됐습니다.
대학주보
2011-08-29 3601
619 대학주보 [1516호] “우리학교 학생들의 응원 소리를 듣고 싶어요” file
대학주보
2012-05-30 3605
618 대학주보 [1503호] ‘파죽지세’ 사자군단, 대학리그엔 적수가 없다
대학주보
2011-11-08 3618
617 대학주보 [1500호] 축구부, 조 3위로 U리그 챔피언십 진출
대학주보
2011-10-04 3621
616 대학주보 [1499호] 양 캠퍼스 취업률 ‘반타작’ 서울 54.1%, 국제 54.8%
대학주보
2011-09-27 3643
615 대학주보 [1529호] 확대되는 입학사정관 전형, 2014년 30%까지
대학주보
2012-11-19 3649
614 대학주보 [1504호] 지키지 않는 공약(公約)은 선심성 공약(空約)일 뿐
대학주보
2011-11-14 3670
613 대학주보 [알림] 특별한 기사, 미디어센터 스페셜을 통해 접하세요!
대학주보
2011-07-28 3673
612 대학주보 [1503호] 도서반납·연체료 납부, 도서관 어디서나 가능해진다
대학주보
2011-11-08 3673
611 대학주보 [1529호] “다양성이 우리학교 입시의 키워드”
대학주보
2012-11-19 3707
610 대학주보 [방중소식] 캠퍼스종합개발 수정안, 공사규모 축소된 잠정안으로 발표
대학주보
2011-08-26 3713
609 대학주보 [1515호] 총학, 캠퍼스종합개발 · 미해결 과제 이행 촉구 등록금 논의는 2.5% 인하로 최종합의에 근접
대학주보
2012-05-30 3722
608 대학주보 [1499호] 국제캠, 캠퍼스종합개발 수정안 두고 협의 지연
대학주보
2011-09-27 3724
607 대학주보 [방중소식] 학자금대출자·장학생 등록금 환불 불이행 논란, 오해로 밝혀져
대학주보
2011-08-26 3734
606 대학주보 [1500호] 약학대학 만족도 79점으로‘최고’ 양 캠퍼스 평균 만족도 66점 … 지난해와 동일
대학주보
2011-10-04 3738
605 대학주보 [1513호] 서울캠 학자요구안 수용 총투표 가결 1 file
대학주보
2012-04-17 3786
604 대학주보 [1548호]90일간 세계일주 떠나는 국악소녀
대학주보
2013-05-28 3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