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30

▣ 중국사의 시공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아서

연재순서

1: 들어가는 말

2: 제국의 쇠퇴와 몰락

1. 은경제 파도 :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은경제체제로의 편입

2. 제국의 몰락 : 他感작용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

3. 피곤한 대지 : 과도한 개간, 의미를 상실한 노동

3: 서남공정과 동북공정

4: 자기 기억의 회복

▲정화의 대항해는 제국의 위용을 힘껏 드높였다. 사진은 항해 60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의 우표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어디까지일까. ‘한국인은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중국인의 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혁과 개방 이전의 모습에 머물러 있는 중국에 대한 인식을 유원준 교수가 통렬하게 꼬집어 준다.


은경제 파도 :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은경제체제로의 편입


15세기 명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정화는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아프리카 동부까지 진출해 제국의 위용을 한껏 드높였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둘러보고 내린 결론은 역시 세상에 중국만한 곳이 없다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로부터 꼭 백년 뒤,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얻은 콜럼버스는 배 몇 척을 대서양에 띄웠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정말 조그만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항해의 나비효과는 세계를 바꾸고 말았다. 찬란했던 잉카 제국은 수백 명에 불과한 침략자의 손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주민들은 살육과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스페인은 인디오를 강제 동원해 페루와 멕시코에서 은을 캐게 했고, 자신들은 그것을 가지고 중국에서 쇼핑을 즐겼다. 큰 손들의 등장에 중국 상인들은 환호했다. 도자기와 비단, 차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명품을 사려는 고객 가운데는 예상과 달리 일본인도 제법 많았다.

일본 역시 세계적인 은 생산국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기름이 넘치는 산유국이었던 셈이다. 명조는 은덩어리를 새로운 화폐로 받아들였고, 경제는 더욱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고 말았다. 임진전쟁이후 일본이 쇄국정책을 채택하자 매출이 1/4 이상 감소했다. 마닐라에서 화교와 분쟁이 생기면서 태평양을 건너오던 스페인 상인의 발길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창고에는 재고가 넘치고 은값이 폭등하자 물가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임진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황실의 사치가 경제를 더욱 휘청거리게 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치명타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날아왔다. 화산이 터진 것이다. 화산재가 지구를 덮어 여름이 실종되면서 기근이 전국을 강타했다. 굶주린 농민은 들고 일어났고, 유통이 무엇인지, 은경제체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명조는 몰려오는 먹구름에 속수무책이었다.

명조의 뒤를 이어 중국을 지배한 이들은 만주인들이었다. 수렵과 유목, 농경 모두가 가능했던 만주의 다양성이 이들에게 뛰어난 적응력을 선사했다. 임진전쟁의 후방기지로 전례 없는 호황이 있었고,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점도 그들의 부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10만이 안 되는 만주 팔기는 한인 병사를 이용해 중국을 지배하는 놀라운 정치력을 과시했고, 나아가 몽골, 티베트와 연계해 한족을 확실하게 포위 제압함으로써 정복왕조의 절정을 이룩했다.


제국의 몰락 : 他感작용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


정권의 교체와 무관하게 중국의 정체성을 유지해 온 저력은 중화의식으로 무장된 문화였다. ‘한림(漢林)’으로 상징되는 생태계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던 전통문화는 강력한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을 통해서 주변지역의 경쟁자를 미연에 제거하면서 오랫동안 독존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고, 거듭된 정치적, 군사적 재난에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유목과 농경사회의 오랜 긴장관계를 말끔하게 해결한 청조는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바이러스를 퇴치한 것으로 생각하고 백신을 다 내다버렸다.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팔기군은 본래의 강인한 기상을 잃어버렸고, 만주인은 전례 없던 성공에 고무되어 급속하게 보수화됐다. 심지어는 한림에 일부 남아 있던 생태계의 다양성마저 없애려 들었다. 단일 수종으로 숲을 가꾸어야 보기에도 좋고 관리도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림의 위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갑자기 남쪽 바다에서 등장한 서구제국주의가 숲을 송두리째 갉아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던 강력한 바이러스였다. 수천 년 푸름을 잃지 않았던 숲은 일시에 고사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단일수종으로는 신종 바이러스를 막아낼 완충지대를 설정하기 어려웠고, 적응은 더더욱 어려웠다. ‘한림은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보는 병충해에 적응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숲의 주인은 거듭 잘못된 처방을 내림으로써 환부는 가지와 줄기, 뿌리를 가리지 않고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성공 속에 멸망의 씨앗이 담겨있고, 적을 가볍게 보는 것이 모든 패배의 근본이라는 오랜 격언이 새롭게 다가왔다.


피곤한 대지 : 과도한 개간, 의미를 상실한 노동


고대 문명이 싹트던 시기, 북중국에는 코뿔소와 코끼리, 하마와 기린이 뛰어다니는 아열대성 기후가 펼쳐져 있었다. 중국의 관공서나 큰 건물 입구마다 세워놓은 사자상을 가리켜 북방사자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겨울철 기온이 지금보다 3~5나 높았고, 부드럽고 기름진 황토는 개간의 고통을 크게 경감시켜 주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중국문명은 가장 전형적인 농업문명으로 성장했고,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간하기 쉽다는 장점은 역으로 자연에 대한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나치게 부지런한 농부는 한 조각의 여유도 남겨두지 않고 산꼭대기까지 몽땅 개간함으로써 자신의 근면함을 과시하였다. 불붙기 시작한 개간 경쟁은 울창한 숲을 자랑하던 북중국의 원시림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연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자양분을 인간에게 빼앗기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의 광풍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장안과 낙양을 비롯해 여러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건축자재와 땔감이 필요했다. 원시림은 벌목꾼의 손에 의해 뗏목으로 만들어져 황하를 통해 도시로 운반됐다. 나무가 베어진 곳에는 농부들이 달라붙어 밭을 일구었다. 말이 없는 대지의 아픔을 자신에 대한 격려로 착각한 농부들은 마지막 한 바가지의 마중물마저 다 마셔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북송이 건국되던 960년 경, 진롱지방에서 마지막으로 대규모 벌채가 이뤄졌다. 기운을 다한 자연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농부들은 먼지 펄펄 날리는 황토고원에서 운명처럼 밭을 갈았지만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한번 정을 거둔 자연은 농부들의 기우제와 애원에도 눈길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기진맥진한 황토 위로 모래까지 쌓이고 있다.

자연은 가볍게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돌아선 마음을 돌리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14억까지 팽창한 중국인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토라진 자연을 달래는 일이다. 장강의 물을 북경 등지로 끌어들이는 남수북조(南水北調) 공사가 최근 준공됐다. 물길을 돌린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는 다급한 현실이다.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아카시아다. 45m까지 발을 뻗을 수 있다. 바로 그 깊이까지 지하수가 내려갔다 하니 먼 발끝으로나마 물기를 맛볼 수 있는 나무가 거의 없는 셈이다.

2013.05.20 유원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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