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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아빠는 정말 나를 버린 걸까?”
보육원에서 지내는 11살 소년 시릴의 꿈은 잃어버린 자전거와 소식이 끊긴 아빠를 되찾는 것이다. 어느 날, 아빠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도망친 시릴은 자신의 소중한 자전거를 아빠가 팔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빠가 자신을 버렸음을 알게 된다. 아빠를 찾던 시릴을 우연히 만나 그의 처지를 알게 된 미용실 주인 사만다는 시릴에게 주말 위탁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아빠를 찾고 싶어하는데….

 

◆ 자전거 탄 소년(The kid with A Bike, 2011) / 제작국가: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 출연: 세실 드 프랑스, 토마 도레 / 87분 / 국내 개봉일: 2012년 1월 19일 / 배급사: (주)티캐스트 / 등급: 12세 관람가 / 장르: 코미디, 드라마

 

 

거기 소년이 있다. 애초에 어머니는 없고, 믿었던 아버지는 보고 싶어 찾아 온 자신을 끝내 외면하며,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할 보육원은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아니었다. 바로 거기. 그 소년의 세계는 스스로 짐작하기도 힘든 슬픔의 복판이다.

그 때문일까. 트뤼포의 역작 <400번의 구타>가 생각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트뤼포의 화신이기도 했던 <400번의 구타> 속 소년 앙트완(장 피에르 레오 분)도 불우하긴 마찬가지였다. 단지 가난해서가 아니라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어서 그도 불행했고 외로웠다. 어머니는 매사 짜증만 부렸고 새아버지를 두고도 외간 남자를 집 안에 들였다. 새아버지는 그런 아내에 대해서도 그리고 앙트완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망가진 내면으로 인해 앙트완은 학교에서도 겉돌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그가 지닌 문제의 근원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단지 질서를 강요하는 제도권의 한 양태로 존재했다.

급기야 학교는 앙트완에게 타자기를 훔쳤다는 누명을 씌우고, 어머니는 억울하게 소년원에 갇힌 아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소년원에 수감된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매엔, 원래부터 그가 소년원에 있어야 했다는 조소(嘲笑)를 머금는다. 결국 앙트완은 소년원을 탈출한다. 갈 곳을 정해놓은 탈출이 아니다. 그리고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닷가에 닿는다. 거긴 자신을 괴롭힌 지상의 끝, 그러나 더 이상 도망칠 곳을 주지 않는 세계의 귀퉁이다. 그때 바닷가에 발을 몇 번 담근 후, 앙트완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뒤돌아선다. 그 순간 앙트완의 무표정은 관객에게 어떤 입장을 요구한다. 여기서의 ‘어떤 입장’은 그 시대의 어른들이 져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는 프랑수아 트뤼포가 불과 28세이던 1959년에 칸영화제에 출품한 장편 데뷔작이자, 누벨바그의 탄생을 알리는 대표작이다. 트뤼포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상상케하는 영화적 분신으로서 앙트완을 그려내며 그의 일상을 담담하게 뒤쫓는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은,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400번의 구타>의 얼개와 유사하게 닮아있다.

 


다르덴 형제가 <자전거 탄 소년>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 ‘어떤 입장’이라고 느꼈다. 앙트완과 비슷한 연배라고 여겨지는 시릴(토마 도레 분)의 세계는 앙트완의 그것처럼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폭압적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잠시 보육원에 맡겼다고 믿는 시릴이었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시릴을 버린 지 오래다. 시릴에게 새 주소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사해 버린 것은 물론, 시릴의 자전거마저 함부로 팔아버린다. 시릴이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 분)에게 마음을 열기 전까지, 그러니까 영화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기 전까지 시릴의 유일한 친구는 바로 그 자전거다. 그렇게 보면, 아버지는 일찌감치 부자관계를 청산하고 싶었던 것이라 해석해도 좋겠다.

시릴에게 자전거를 되찾아 준 사람은 사만다다.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경영하는 그녀는 잠시 스친 사이인 시릴에게 곧바로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주말이면 보육원으로부터 시릴을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어린 나이임에도 사람에게 얻은 상처가 적지 않은 시릴은 사만다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때 헝클어진 내면을 가진 시릴에게 한 친구가 다가온다. 동네 불량배다. 그는 자신의 본색을 숨긴 채, 시릴에게 자기 집을 내어주고 비디오게임을 시켜준다.

 

▲시릴에게 자전거는 '세상으로 향하는 시선'을 표상하는 대상이다. 자전거를 팔아버린 아버지는 시릴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인물이고, 팔린 자전거를 되찾아준 사만다는 시릴을 밝은 세상으로 이끄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전거를 범행에 사용하도록 꼬드기는 불량배는 시릴의 세계관을 왜곡시키는 인물이다.

 


그러나 관객의 예상대로, 또 사만다의 우려대로, 불량배가 시릴에게 접근한 이유가 밝혀진다. 강도짓을 대신 시키려 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릴의 강도행각은 꼬이고 곧이어 시릴은 불량배로부터 버림받는다. 그 순간 훔친 돈을 들고 먼 거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버지가 일하는 장소다. 시릴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아버지에게 도착할 때,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분명 '어떤 입장'이다. 이미 정해진 수순이 있는 것처럼, 그는 그곳에서도 버림받는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과거지향적인 희망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사만다가 피해자측과 합의를 봄으로써, 시릴이 일으킨 사고는 해결된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 종반부, 절망의 그림자는 시릴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어떤 입장’을 재차 요구하기 위한 다르덴 형제의 계산된 플롯이다. 시릴은 이웃을 초대해 파티를 열자는 사만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숯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릴이 사만다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건 틀림없이 희망의 징조다. 그것도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 순간, 시릴을 뒤쫓아가 돌을 던진 이가 있다. 시릴에게 야구방망이를 얻어맞았던, 그러니까 강도 피해를 당했던 부자(父子) 중 젊은 아들이 바로 그다.

그러나 돌에 맞아 쓰러졌던 시릴은 일어선다. 그리고는 시릴이 죽은 줄 알고 살인죄를 면피할 방도를 강구하던 젊은 아들과 그의 아버지를 뒤로 하고, 시릴은 자전거 위에 오른다. 영화는 거기까지다. 그 순간, 미세한 희망 너머로 그보다 선명한 절망이 그의 자전거를 스쳐지나간다. 그래선 안 되겠지만, 그가 자라서 다르덴 형제의 전작 <더 차일드>의 브루노(제레미 레니에 분: 그는 <자전거 탄 소년>에서 시릴의 무책임한 아버지로 나온다)의 삶으로 갈 지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도둑질로 연명하는 중 태어난 아들을 무책임하게 팔아버리는 미성숙한 ‘아이-어른’ 말이다.

 

▲시릴의 '절망 속에 희망 한 줌'뿐인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감독의 전작 <더 차일드> 속 브루노의 삶이 오버랩된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한 상상일까. 여자친구가 데려온 자신의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에도 소매치기 따위에 더 신경쓰는 남자. 그 아기를 팔아먹고 위기에 몰린 순간에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여자친구의 집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휴대폰 빌려달라는 기생충 같은 녀석, 그런 녀석이 바로 브루노(였)다.

 


다르덴 형제가 추구한 리얼리즘 계열 영화는 특별하다. 어쩌면 그의 영화의 뿌리를 비토리오 데 시카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르덴 형제의 핸드헬드 쇼트는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주인공의 흔들리는 내면 풍경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배우로서 훈련되지 않은 주인공이 펼치는 연기는 평범한 삶에서 이탈된 자들의 실존적 상황을 꾸밈없이 전달한다. 그런 일련의 관습 속에 <자전거를 탄 소년>도 머문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영화에는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을 일으키는 음악이 종종 영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다르덴 형제에겐 좀 색다른 시도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죽었으면 어쩌나 했던 시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전거를 타고 사만다의 집으로 향할 때, 우린 ‘어떤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앙트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오히려 퇴행했으나 시릴은 성장 가능성을 풍긴다. 트뤼포가 흑백화면 속에서 미래가 없는 앙트완을 이제 어떡할거냐고 물었다면, 다르덴 형제는 특유의 실감나는 자연광 속에서 묻는다. 불안한대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시릴에게 당신은 어떤 친구가 되어주겠느냐고.

 

▲<400번의 구타>는 소년원에 수감된 앙트완이 축구를 하다가 무작정 탈출을 시도한 뒤,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바닷가의 파도 앞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를 통해 '이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 트뤼포는 이어진 연작 영화를 통해 앙트완의 삶을 '보여준다'. 소년은 소녀를 사랑하고(<앙투완과 콜레트>, 1962), 제대 뒤에 애인을 다시 만나 와인 창고에서 키스를 훔치고(<훔친 키스>, 1968), 그녀와 결혼한 뒤 일본 여자를 만나 모험을 즐기고(<결혼생활>, 1970), 그리고 결국 이혼하여 혼자 사는 중년(<바쁜 사랑>, 1979)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런 트뤼포와는 달리, 다르덴 형제는 우리에게 다만 가만히 물어볼 뿐이다. 당신은, 시릴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줄 것인가? 시릴의 곁에서 당신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세상으로 나아가겠는가?라고.

 


시릴이 불안과 외로움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있을 때다. 어쩌면 그가 느끼는 평안과 자유는 자전거 안장만한 부피인지도 모른다. 불행하다 싶지만, 우리가 누리는 삶의 여유가 시릴에게 없는 어떤 것이라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주변의 시릴을 돌볼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 종반부 사만다는 시릴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강가로 나가 주었다. 이제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하겠는가. 젊음은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자 실천이고, 삶은 자기 안으로의 고임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흐름인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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