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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병화는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오랫동안 봉직한 분이다. 그 분은 평생 80여 권이 넘는 시집을 간행할 정도로 다작으로 유명하고, ‘어머니’, ‘의자’ 등과 같은 시는 국어교과서 첫머리에 나올 정도로 주옥같다. 시 뿐만 아니라 글씨,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웬만한 서예가, 미술가를 능가한다. 그 분은 항상 자신을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직접 먹을 갈아 ‘꿈’이라는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줬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독특한 필체로 하얀 화선지나 혹은 자신의 시집 내표지에 써주며 “우리 사랑하는 청춘들, 꿈을 가지시게”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도심의 유명 책방에 들렀다. 모든 학문 영역의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실로 지식의 보물창고다. 이 보물창고에 청춘들이 넘쳐난다. 뿌듯하다. 정말 뿌듯하다. 여기 우리의 미래가 있다. 그런데 청춘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가판대 앞을 지나가다 일순 가슴이 답답해진다. 거기는 주로 사람의 운명을 예견해 주는 예언서나 역술서가 가득한 곳이다.

왜 이렇게 많은 청춘들이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미리 가보고 싶어 하는 걸까. 이제 막 시작하는 인생의 출발점에서 인생의 끝으로 향하는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자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허기를 메우려고 하는 작은 어깨짓일 게다. 아마도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고 싶은 소박한 욕망일 게다. 가판대를 삥 둘러싸고 예언서와 역술서를 읽고 있는 청춘들의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밤에 꾸는 꿈과 앞날을 생각하는 꿈이다. 전자를 ‘夢幻’이요, 후자는 ‘未來’다. 밤에 꾸는 꿈은 일회성이다. 다음날 아침 대부분 잊는다. 앞날을 생각하는 꿈은 한 개인이 살아갈 삶의 파노라마다. 꿈은 곧 한 개인의 역사 창조다. ‘꿈을 지녀라’ ‘꿈은 이루어진다’ 등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많은 선각자들이 여전히 그 말에 무게를 싣는 것은 그만큼 귀한 말이기 때문이다.

꿈은 일종의 과정이다. 꿈은 꾼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미래다. 미래는 미리 알 수 없어 매력적이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이미 미래가 아니다. 미래를 알아 버리면 꿈꾸지 못한다. 아직 가보지 못하고 해 보지 못한 미지의 내 삶의 파노라마를 만들어 간다는 것. 이 얼마나 신나고 멋진 일인가.

꿈은 분명 꿈꾸는 자의 몫이다. 꿈은 누가 대신해 주지 못한다. 엉터리 미래를 믿고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엉터리 미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엉터리라는 뜻이다. 엉터리 미래를 믿는 일은 청춘들이 해서는 안 될 가장 첫 번째 덕목이다.

종종 자신만의 꿈을 꿀 겨를도 없이 엄마의 대입 프로젝트에 끌려 다니며 쫓기듯 대학에 들어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엄마의 취업과 결혼 프로젝트에 끌려 다니는 청춘을 본다.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하고 ‘난 꿈이 없어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는 청춘을 본다. 냉혹한 삶의 현장에서 꿈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청춘을 본다. 아예 꿈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남의 꿈에 편승해 보려는 무뇌 청춘을 본다. 안쓰럽고 안타깝다는 것을 떠나 너무 서럽다.

미래를 미리 가보고 싶은 청춘들에게 고하노니 이제 닥치고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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