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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승자는 누구였나?” 이것은 내가 몇 해 전 영국 런던의 템스TV(Themes TV)가 기획한 다큐멘터리 “Korea: the Forgotten War” 제작에 참여하면서 기획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6·25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수백만이 죽고 다치고 집과 산업시설이 포연 속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남한과 북한, 후진국 중국을 꺾지 못하고 휴전협정을 맺어야만 했던 미국을 승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항미원조(抗美援朝)*에 ‘성공’한 중국이나 소련이 승자인가? 시대착오적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같은 극좌 원리주의 정책을 펼쳐 인민들을 기아선상에 몰아넣고 농업과 산업을 원시시대로 되돌려 버린 중국이나, 가뜩이나 열악한 재원을 미국과의 무한 군비경쟁(arms race)에 쏟아 붓다 결국 스스로 무너져버린 소련도 승자일 수 없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이 어부지리를 얻은 승자였다고 생각했다.

6·25전쟁이 터지기 전 일본 경제는 끝을 모르고 오르는 물가로 인한 생활고 때문에 공산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만큼 파탄 직전이었다.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미국은 일본에 30억 달러를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일본은 초긴축정책(Dodge Plan)에서 벗어나 특수경제(特需經濟, special procurement)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농담 삼아 일본이 미국에 대해 서방요배(西方遙拜)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최근 David Godfield가 쓴 <불타는 아메리카: 어떻게 남북전쟁이 나라를 만들었던가?(America Aflame: How the Civil War Created a Nation)>를 읽고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이 책은 나의 의표를 찔렀다. 잔인했고 참혹했던 남북전쟁이 “인종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불가결의 전주곡”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6·25전쟁을 보는 관점은 동족상잔의 비극, 증오와 학살, 대량파괴와 절대빈곤, 외세 개입과 분단의 고착화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미국의 남북전쟁처럼 6·25전쟁도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전쟁 전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는 매우 취약했다. 당시 좌익 세력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결사반대했다. 5·10총선거를 반대하여 일어난 제주4·3사건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려던 14연대의 반란사건(여·순반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농민들도 대한민국의 지지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1949년 시행한 농지개혁으로 잠재적 지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에 대한 좌익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정치인들도 태반이 5·10총선거에 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남북협상파가 지식인층에 큰 영향을 미쳐 남한 정계는 남북협상파와 단독정부수립파로 크게 분열되어 있었다**.

경제 또한 참담한 상황이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자국의 농산물 공급기지와 병참기지로 이용했다. 해방으로 이 예속관계는 단절되었지만 갑작스런 변화, 특히 남북의 분단은 한국경제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발전소, 제철소, 비료공장과 같은 주요 산업시설은 대부분 북한에 있었다. 더욱이 만주와 북한에서 귀향민과 피난민들이 월남해오면서 혼란에 빠진 한국경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가 총체적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전쟁까지 겪으며 폐허가 된 대한민국은 어떻게 회생했는가? 나는 6·25전쟁이 대한민국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먼저 정치체제가 강화되었다. 전쟁과 계엄령은 군대권력을 절대화시켰고, 해외에서 들어온 원조물자는 정부를 통해 유통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권력과 정부기능을 강화시켰다. 또한 전쟁 과정에서 노출된 친공세력은 월북하거나 빨치산이 되었고, 남북협상파 또한 월북하거나 납북되었다. 공산주의를 맛본 대중도 반공세력이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건국의 반대세력은 사라지고 지지세력이 강화되었다. 반대파와 회의파가 우익세력과 화합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통합(integration)이 이루어진 것이다.

경제도 10년 만에 재건되었고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미국과 UN 회원국의 원조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6·25전쟁의 보이지 않는 영향에 주목한다. 첫째는 급속하게 팽창한 군대의 영향이고, 둘째는 강화된 한미관계의 영향이다. 한국의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그에 대한 6·25전쟁의 영향은 주목받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6·25전쟁은 ‘한국 근대화를 위한 불가결의 전주곡’이었다.

전쟁 전 군대는 별 영향력이 없었다. 그 숫자도 도합 10만 5천 명에 불과했다. 전쟁 과정에서 군대는 급속하게 팽창했다. 1952년 46만 3천 명, 1953년에는 75만 명의 대군으로 성장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병력은 계속 보충되고 제대하는 것을 반복하여 군 생활을 경험한 수백만의 청년들이 사회로 배출되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부분 농민적 삶을 영위하던 이들은 군에서 새로운 문물을 접한 뒤 사회로 나아가 근대화에 기여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기술자와 노동자들에게 군대에서 받은 교육과 경험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군대문화의 확산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조직이 바로 군대였기 때문이다. 미 군사고문단의 지도하에 조직·훈련된 군대는 압축적인 서양문화 수용의 통로였다. 물론 군대문화의 확산은 어두운 면 또한 수반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근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6.25전쟁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의 하드웨어를 모조리 부숴놓았지만, 오히려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발전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전쟁 후 그동안 미약하던 정치체제는 강화되었고, 공고해진 한미관계를 기반으로 경제적 상황 역시 진일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6.25전쟁의 가장 큰 수혜국은 대한민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을 거치며 긴밀해진 한미관계도 한국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사실 등을 근거로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한때 한국사회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에 의하면 후진국(주변부)는 선진국(중심부)의 발전에 도움을 줄 뿐이고 경제적으로 종속되어있기 때문에 자신의 발전은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역대 한국정부 중에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하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던가? 미국은 국익을 위해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한국 또한 자국의 국익을 위해 미군의 주둔을 원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국제관계는 상호착취·상호의존의 관계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은 양자 상호간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종속이론이 주장하는 중심부-주변부 논리대로라면 중국의 성장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지금도 중국은 단순조립산업 위주의 국가이지만 그럼에도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처음에는 외국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 수출하는 단순조립산업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국내자본 투자 비율을 늘이고 외국자본 또한 유치하여 질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한국은 바나나 리퍼블릭이 아니다. 한국은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종속이론의 근거가 되었던 남미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요컨대 압축적인 서양문화 수용의 전달체 역할을 한 군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상징되는 긴밀한 한미관계를 씨줄과 날줄 삼아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었다. 6·25전쟁의 최대 승자는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었다.

 


 

*항미원조: 항미원조는 조선(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다는 뜻으로, 6·25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참전의 명분이었으며현재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애초 내전으로 시작된 전쟁에 미국이 참전해 중국과 북한의 국경까지 위협하게 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참전했다는 논리이다.

**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어 미·소 합의에 의한 한반도 임시정부 수립의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으로 이관시켰다. UN총회는 1947년 11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UN한국임시위원단 감시 하의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 실시를 결정했다. 이를 소련이 거부하여 북한 지역에서의 선거가 불가능해지자, 1948년 2월 UN 소총회는 선거가 가능한 남한 지역에서만의 선거 실시를 결정했다. 이에 남로당 등 좌익 진영과 김구·김규식 등 남북협상파는 단독정부가 수립되면 민족이 영구 분단된다고 주장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추진하였다. 반면 이전부터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 등은 남한 지역에서만의 단독선거를 적극 지지하였다.


◆ 내용 정리: 조수룡(경희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 그래픽 : 김세익(대학주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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