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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나를 한번 보시게. 머리에 서리가 내린 초로의 백면서생. 나는 생전처음 염색을 했네. 
달포 전, 전철에서 어떤 괜찮게 생긴 젊은 아줌마가 내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여기 앉으세요.” 
‘아니, 같이 연애할 나이 같은 사람이 내게 자리를...’ 
“됐습니다.” 하며 나는 그 자리를 피해 서둘러 경로석 쪽으로 갔네. 그런데 내 등 뒤에서 칠순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한 노인이,     
“여보슈,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으슈.”
 난 그 길로 집으로 달려와 염색을 했지. 그러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색’과 ‘창피’ 그 자체였네. 염색은 염색일 뿐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여보게. 자네들 모두 집집마다 한 둘 밖에 없는 귀한 집 자식들 아닌가. 오랫동안 자네들 곁에 있으면서 귀한 집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죄가 크네.   
자네들에게 보여 준 건 권모와 술수뿐
자네들에게 안겨 준 건 시련과 고통뿐   
자네들에게 쥐어 준 건 불안과 좌절뿐
자네들에게 넘겨 준 건 분노와 아픔뿐
이제 와서 참고 견디면 돕겠노라고 한들 무슨 힘이 되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난 폭정과 탄압으로 청춘을 보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대를 살았었네. 오로지 냉소와 저항뿐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얻은 것이라곤 몸에 밴 최루탄 냄새. 이런 청춘이 커서 다시금 청춘들에게 단절과 핍박을 준 장본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난 거지같은 청춘을 살아 온 청춘 밖의 한 사람으로 무조건 자네들을 편들기로 했네.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자의 한 멤버로서 자네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청춘을 구박하고 상처를 준 자가 속죄하듯 자네들에게 들려주겠네. 내가 봐 왔던 많은 청춘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그리고 말하려 하네. 자네들의 흐느낌을, 자네들의 외침을, 무엇이 자네들을 아프게 했는지 그 시작과 끝을 알리려 하네.    

 형이상학적 도덕, 현학적인 충고, 피곤한 덕담 뭐 이런 등등을 얘기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네. 나도 그런 건 싫어. 나도 오래 전 윗세대로부터 이런 참혹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곤하게 잠든 척했거든. 잠시 졸리면 자고 다시 일어나 봐 주시게. 다만 가장 두려운 것은 지금부터 하려는 청춘 이야기가 나이 먹은 선생의 꼼수로 들리면 어쩌나 하는 것일세. 그러면 그만 두겠네. 언제라도 그만 두겠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타인에 의해서 던져진 존재, 피투자이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자기의지대로 태어난 사람은 없네. 그래서 타인에 의해서 키워지고, 키워지는 동안에도 자기의지대로 살지 못 하네. 누군가의 편의에 만들어진 관습과 제도로 자기의지에 대해 족쇄를 채우지. 교육이란 어쩌면 자기의지에 문화적 족쇄를 채우는 과정이지. 이렇게해야 마음대로 부려먹지 않겠는가. 요즘 대학은 아예 자기의지에 포박까지 하지. 대학은 족쇄를 차고 포박을 당한 청춘들로 가득하네. 자, 이제부터 족쇄와 포박을 풀고 청춘이 가지는 진정한 자유와 희망의 불씨를 지펴보세.   

 

* 최상진 교수의 칼럼은 필자와의 줄다리기 끝에 월 2회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미디어센터 생각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필자분의 여건이 월 2회 게재가 가능한 것이라 이용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다만, 미디어센터는 앞으로도 필자분께 '강력하게' 부탁을 하여 게재 주기를 조금더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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