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30

▣ 후마니타스칼리지 - 대학주보 공동기획, 고전의 사계

우리는 왜 정치권력에 복종해야 하고 왜 국가가 정한 법에 따라야 하는가? 중세 유럽에서 왕의 권력은 신이 준 것이므로 신성하며, 백성들은 당연히 그에 복종해야 한다. 왕권신수설이라 불린 이러한 생각은 16-17세기 유럽의 절대왕정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권력 정당화 논리였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 an)은 왕권신수설이 아닌 새로운 권력의 정당화 논리를 제시한 책이다. 홉스는 다음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심했다. “어떻게 하면 신이 아니라 인간 이성에 기초한 정치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

홉스가 고안한 해법의 키워드는 공포였다. 일반적으로 공포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경험되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왕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권력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그것이야말로 백성들을 왕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주된 힘이었다. 그러나 홉스는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공포는 왕의 권력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없는 상태로부터 나온다. 이 권력 없는 상태, 개인들이 무제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태는 불가피하게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획득할 수 있는 재화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고 싸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bellum omnium contra omnes)가 바로 홉스가 상정한 자연상태이다.

여기서 홉스에 관한 널리 퍼진 오해 하나를 지적하자. 고등학교에서 홉스가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배웠다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가 악한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신이라고도 썼다. 전자는 상위 권력이 없는 국가들 사이에서 그러하고, 후자는 국가 안에 있는 시민들의 경우이다. , 인간은 사회시스템에 따라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회시스템을 만들 것인가가 홉스의 관심사였다.

혹자는 자연상태를 영구적인 전쟁상태로 말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홉스의 자연상태는 그가 영향을 준 존 로크나 장 자크 루소의 자연상태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이다. 자연상태는 역사적으로 원시사회, 내전상황, 국제관계에서 볼 수 있다고 홉스는 말했다.

이 중에서도 그의 주된 관심은 과거의 원시사회가 아니라 당시의 국제관계와 내전으로 인한 무정부상태, 특히 내전상태였다. 그는 실제로 폭력이 발생하는 갈등상황만이 아니라 평화가 불안정한 상태까지도 전쟁상태라고 봤다. 홉스의 자연상태는 본질적으로 그가 처했던 17세기 영국의 내전과 혼란스런 국제정치상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반영한 것이다.

전쟁상태에서 개인들은 무질서에 대한 공포로부터 각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의 권력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무질서나 군중의 폭력보다는 절대적 권력을 감내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권자에게 양도하는 대신 그의 보호를 받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왜 정치권력이 필요한가, 우리는 왜 정치권력에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홉스의 답변은 바로 안전또는 치안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정치권력의 새로운 정당화 논리를 치안논리라고 부른다.

만일 공공의 질서와 만인의 안전을 보장할 정치체계를 추구한다면, 치안논리는 단일하고 강력한 절대 권력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두를 압도할 권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홉스가 이 절대적인 권력에 붙인 이름이 리바이어던이다.

근대 이전에는 왕에 대한 공포가 정치권력의 주된 통치방식이었다면, 홉스는 오히려 무질서에 대한 공포를 통해 정치권력을 정당화했다. 1651년에 출판된 리바이어던에 담겨있는 홉스의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정치권력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정당화 기제이다. 가장 극적인 예는 20019·11테러 이후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이들 나라의 정부들은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대중적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권력과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여전히 우리는 정치권력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공권력의 강화에 동의하고 정치권력이 만든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 않은가?

1865년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판화 리바이어던의 파괴’(Destruction of Leviathan)

2013.05.20 이기라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번호
글쓴이
252 대학주보 [1529호] “마음의 상처 치유는 물론 대인기술까지 전하고 싶어요”
대학주보
2012-11-19 4485
251 대학주보 [1544호] 학내 미디어 활용패턴 조사 결과가 갖는 다양한 함의
대학주보
2013-06-04 4483
250 대학주보 [1529호] 김민기, 세계대학 배드민턴 단체전 우승
대학주보
2012-11-19 4480
249 대학주보 [1500호 특집] 대학평가 객관성의 역설, 지표와 현실의 괴리 해결할 방안 모색해야
대학주보
2011-10-04 4479
248 대학주보 [1464호] 국제캠, 졸업자가진단 프로그램 전학년 확대 1
대학주보
2010-05-21 4477
247 대학주보 [1529호] ‘2012 경희인의 밤’문재인 동문, “담대하게 선거 임할것”
대학주보
2012-11-19 4476
246 대학주보 [1462호] 전학대회‘불발’, 대표자 책임감 부재에 불만 제기돼
대학주보
2010-05-05 4475
245 대학주보 [1531호] “수업 외에는 얼굴 한 번 못봐” 형식적인 멘토링제도 개선 시급 1
대학주보
2012-12-07 4471
244 대학주보 [1502호] 국제캠퍼스 비전선포 5주년 - 창의적 교육, 학문분야 특성화 아직 진행형
대학주보
2011-11-01 4470
243 대학주보 [1495호] 우리학교, 에너지 다소비 건물로 지정
대학주보
2011-07-28 4465
242 대학주보 [1462호] 홍보없이 1년째 방치된 정책제안방 3
대학주보
2010-05-05 4464
대학주보 [1542호] 권력에 대한 공포에서 무질서에 대한 공포로
대학주보
2013-05-28 4457
240 대학주보 [1476호]온라인 커뮤니티,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조’ 4
대학주보
2010-11-16 4457
239 대학주보 [1531호] 기형적인 선거시행세칙, 이론상 130% 투표율도 가능 정용필 회장 “문제제기에 공감, 내년 개정 추진”
대학주보
2012-12-07 4456
238 대학주보 [1462호] Vote for Change ‘대학생 없는 정치’ 타파
대학주보
2010-05-05 4447
237 대학주보 [알림] 종간호입니다. 2
대학주보
2011-06-09 4443
236 대학주보 [1490호] 창간기념기획 : 편집권- 대학지원 사이 불안한 줄타기
대학주보
2011-05-10 4443
235 대학주보 [1462호] 대학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대학주보
2010-05-05 4442
234 대학주보 [1544호] 국제캠, 지난 3월 이후 등책위 진행 안해
대학주보
2013-06-04 4435
233 대학주보 [캠퍼스 소식] 경희의료원 노·사 임금 3.0% 인상 등 잠정 합의
대학주보
2011-09-15 4435
232 대학주보 [1490호] 대학언론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2
대학주보
2011-05-10 4435
231 대학주보 [1534호] 등록금 논의, 언제까지 계속되나
대학주보
2013-03-12 4432
230 대학주보 [1541호] 경쟁 대신 상생의 가치 추구한다
대학주보
2013-05-28 4431
229 대학주보 [사람] 농구부 박래훈(스포츠지도학 2008) 주장
대학주보
2011-12-28 4430
228 대학주보 [1566호] 신임 재정사업본부장 김상만 교수, “유·무형 자산 활용해 수익 창출할 것”
대학주보
2014-04-10 4427
227 대학주보 [1475호]암사지구 출토유물 기획전, 미공개 유물 전시해
대학주보
2010-11-09 4419
226 대학주보 [방중소식] 외국인학생, 의료보험 우산쓴다
대학주보
2011-08-25 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