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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중세에 철학과 과학예술의 역할은 신학의 시녀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찬미하는 보조적인 역할이었다모든 것은 기독교 교리로 설명됐고 이것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교회의 권위에 맞서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됐다.

그러나 14세기부터 이런 신중심주의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화가들은 성서와 성인들의 삶을 주제로 한 종교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조각가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몸을 조각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모습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려냄으로써 내세를 인간화시켰고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보통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신과 종교가 중심이던 세상이 인간 중심의 세계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가 바로 르네상스다.

셰익스피어(1564-1616)는 그 어느 누구보다 철저하게 신과 기독교로부터 독립을 추구했고 인간 중심주의를 완결시키려 노력했다여전히 기독교적인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쓴 다른 르네상스 작가들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종교적인 주제나 성인들을 다룬 작품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의 모든 작품은 연극무대’ 같은 현세에서 왕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층의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이다셰익스피어는 신화나 기독교에 기대지 않은 채 인간 중심의 문학 작품을 쓴 최초의 작가이자 뛰어난 문장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인간이 중심인 세계관을 작품 속에 담아낸 최고의 작가이다.

7면으로 이어짐

셰익스피어의 이런 인간 중심주의는 죽느냐 사느냐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죽음이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고 죽음에 대한 무지는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기독교는 죽은 후에도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원한 삶을 살며 현세보다 내세가 더 중요하다는 내세관으로 죽음의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내세는 불안의 대상이나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현세만큼 확실한 세계로 간주되고 자살은 엄격히 금지된다.

기독교에서 삶과 죽음은 고민하거나 선택에 의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명확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어서 따르기만 하면 되는 문제이다그러므로 죽음의 문제를 신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햄릿의 물음, “죽느냐 사느냐?”는 기독교의 근간인 내세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도전적인 질문이다.이 질문은 기독교와 그 영향력이 종말을 맞았으며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이 질문에는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라는 칸트의 사페레 아우데 Sapere aude”(과감히 알려고 하라정신과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이미 내포돼 있다그러나 칸트와 니체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대신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독백을 통해 조용히우회적으로그러나 치명적으로 기독교에 철퇴를 가한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작가로서 셰익스피어가 보여주는 역량이자 문학이 지닌 고유한 힘과 매력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햄릿의 독백은 흔히 우유부단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최고의 증거로 간주된다이런 해석에 대해 햄릿과 셰익스피어는 스스로 읽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그것이 바로 죽느냐 사느냐는 질문의 메시지가 아닐까?” 반문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질문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미래의 인류에게 오히려 더 유효한 질문일지 모른다복제 기술의 발달로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될 때 미래의 인류는 셰익스피어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존 에버렛 밀레이가 햄릿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오필리아의 죽음’(1852)

2013.06.10이미선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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