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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話 #1
모두가 피해자고, 모두가 가해자다

 

상민 편집위원 gasi44@paran.com

 

 최규석의 만화는 언제나 우리 주변의 현실을 담는다. 작년에 나온 장편 『울기엔 좀 애매한』도 이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장편 데뷔작 『습지생태보고서』가 이미 대학생이 된 인간들의 군상을 헤집었다면, 이 작품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고등학교 3학년들의 주변을 파헤친다. 물론 경희대에는 만화 ·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없으며 ‘만화 입시학원’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크게 공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화 입시학원’을 ‘보습학원’이나 ‘종합학원’으로 바꿔 생각하면 이 작품은 20대 바로 직전에 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등장인물의 상황은 최규석의 역대 장편 중 사상 최악이다. 딱히 가진 특기도 없고 얼굴마저 그리 잘 생긴 편이 아닌 주인공 오원빈은 설상가상으로 이름이 인기 배우 원빈과 닮은 바람에 주위에서 비웃음을 듣고 다닌다. 집안 사정마저 어려워 자칫하면 대학에 가지도 못 한다. 어머니의 권유로 학원에 입학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시궁창에 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만화가를 지망했지만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 원장에 굽실거리는 강사 태섭, 수시에 합격해도 집안 사정이 어러워 번번이 등록을 못 하는 재수생 은수, 용돈을 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 유흥업소에서 대학생으로 속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은지. 물론 여기에도 계급차가 있어 아버지를 중소기업 사장으로 둔 재력 빵빵한 지현도 있다. 또한 원빈의 주변엔 어머니가 근근이 꾸리는 식당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와 헌책방의 386 아저씨도 존재한다.
 다른 일반적인 만화였다면 원빈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대학에 합격하거나 또는 떨어지더라도 희망을 보여주는 결말로 끝을 냈겠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게 없다. 정말 뼛속 깊게 대한민국 루저들의 삶과 현실을 미화 없이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피해자 - 가해자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상황 묘사다. 누구도 영원한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니다. 심지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루저 위치에 있던 것으로 보이던 원빈마저도 결국 끝에 와서 누군가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 만다. 이러한 스토리 구조는 특정 등장인물에게 모든 사건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한다. 물론 선악 구분이 확실하게 정해지는 만화에 익숙했던 독자라면 이런 식의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변을 보라. 선악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건이 대체 얼마나 있었는가. 심지어는 선악으로 구분했다고 생각하는 사건 안에서도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수채화 방식으로 만들어진 만화는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급박하게 등장인물들의 삶을 훑어나가다가 매우 우울하게 종지부를 짓는다.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채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지금까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웃기만 했던 원빈은 끝에 다 와서야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작품 제목이 『울기엔 좀 애매한』임을 생각하면 이는 슬프면서도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결말이다. 비록 희망을 나타내는 암시는 없지만, 울어서 지금 자기가 놓여있는 현실을 온 몸으로 깨닫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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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사계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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