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본 프로젝트 캠퍼스에 새겨진 경희의 정신 ⑩
#.우리학교 캠퍼스 곳곳에는 경희의 교육이념을 담고 있는 글귀와 인생의 지표로 삼을만한 글귀가 많다. 대학주보는 경희기록관, 중앙박물관과의 공동기획으로 탁본 프로젝트를 진행해 중요 글귀를 탁본으로 남기고, 그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이란 무엇일까?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여러 견해와 해석이 있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대학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12세기 유럽에서 대학이 등장한 이유는 당시 사회가 대학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학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대학이 사회적 요구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질문해야 한다. “경희대학교는 사회의 필요와 요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1950~60년대 한국 사회의 최대과제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우리대학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농촌계몽운동’을 통해 농가의 일손을 덜어주고, 생활환경을 개선했으며, 낙후된 의식을 개혁하기 위해 교육 사업에 앞장섰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환경개선과 의식개혁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잘살기운동’으로 이름 붙여진 이 운동의 성과는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펼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한국사회는 실제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는 심각한 후유증도 동반했다. 정신문명의 쇠퇴로 인한 각종 문제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우리대학은 이러한 사회병리현상들의 근본원인이 인간성의 훼손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조화를 이룬 사회, 즉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밝은사회운동’을 1970년대에 전개한다. 교시탑에서 노천극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우측 편에 거대한 기둥 두 개가 솟아 있다. 높이가 무려 25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기둥들을 일부에서는 ‘마징가탑’이라고도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경희의 탑’이다. 1979년 개교30주년을 맞이한 우리대학이 1960~70년대에 추진했던 사회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각각의 탑신부에 ‘잘살기운동’, ‘밝은사회운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희의 탑’은 1960년대의 ‘잘살기운동’, 1970년대의 ‘밝은사회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탑의 전면부에는 이번 탁본의 대상인 ‘잘살기운동 헌장’과 ‘밝은사회운동 헌장’이 두 개의 동판에 각각 새겨져있다. 1950~70년대 그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대학은 온 힘을 기울여 사회운동에 앞장서왔다. 대학이 마땅히 감당해야할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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