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꽤나 가진 독신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보편적 진리다. 그런 남자가 이사를 오게 되면, 그 주변의 집안들은 이 보편적 진리를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심정인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그를 자기 집안 딸들 중 누군가가 차지하게 될 재산으로 여기고는 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첫 문단이다. 지금 봐도 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소설 전체를 압축하는 첫 문단은 그리 흔치 않다. 《오만과 편견》 이외에도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제인 오스틴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사후 2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의 소설은 대중적인 하이틴 로맨스, ‘칙릿chick lit’, 드라마, 영화에서 즐겨 다루는 연애의 교본이자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성과 오락성,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것이 그녀 소설의 매력이다. 그러다보니 오스틴에게 바치는 오마주 소설인 《제인 오스틴 북클럽》뿐만 아니라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기상천외한 작품도 등장했다. 《오만과 편견》의 배경이 됐던 18세기 영국은 가문, 신분, 재산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위상이 촘촘하게 결정되는 계급 사회였다. 귀족들이 정략결혼을 했다면, 시골의 젠트리 계층 또한 그들 나름의 엄격한 계급질서에 따라 엇비슷한 집안끼리 결혼했다. 이처럼 기존의 계급질서를 재생산하는 것이 결혼제도였다. 따라서 자유연애, 낭만적 사랑이 단단한 계급질서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그다지 보이지 않던 시대였다. ▶7면으로 이어짐 그런 시대에 제인 오스틴은 자유연애의 ‘가능성’에서 인간의 품격을 찾고자 했다. 상류층 신사인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아내를 찾는데 아쉬울 것이 없는 남자다. 아쉬울 것이 없으므로 오만할 수밖에 없다. 재산도 없고, 뛰어난 미모도 없지만 지적이고 자존심으로 뭉친 엘리자베스는 편견에 빠질 소지가 다분하다. 그녀는 시골 젠트리 계층 목사의 딸이다. 그녀의 집안은 딸만 네 명이다. 그 당시 영국의 상속법에 따라 아버지의 재산은 딸들이 물려받지 못했다. 먼 친척이라도 집안의 남자가 물려받게 돼 있었다. 만약 아버지에게 갑작스런 변고가 생기면, 이 집안의 딸들은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 될 판이다. 아버지의 재산이 먼 친척 남성에게 돌아간다면, 그처럼 억울할 데가 없지만, 법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방법은 집안의 재산을 물려받게 될 ‘그’ 남자를 잡아서 결혼하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주제 파악도 못하고 가장 그럴듯한 남편감인 ‘그’ 남자, 콜린스 목사를 거절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뛰어난 미모도 없고,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지참금으로 가져올 재산도 없지만 당당하고 지적인 엘리자베스 베넷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 캐릭터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이 그런 유형에 속할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여성들의 로망인 상류층 가문의 안주인이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엘리자베스 주변의 여러 쌍의 결혼을 통해 오스틴은 영국사회의 계급적인 질서, 속물근성, 당대 풍속을 웃음과 풍자로 꼼꼼하게 묘사한다. 오스틴의 소설을 노처녀들이 풀어내는 신변잡담으로 얕잡아 볼 수도 있겠지만, 계급질서와 인간의 심리를 이처럼 섬세하게 비틀어서 보여주는 소설 또한 흔치 않다. 그런 이유로 하여, 제인 오스틴 이전에도 백 명의 베스트셀러 여성 소설가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작품이 아직도 살아남아 끊임없이 읽히는 고전이 되지는 않았을까? 오스틴의 소설을 노처녀들이 풀어내는 신변잡담으로 얕잡아 볼 수도 있겠지만, 영국의 계급질서와 인간의 심리를 이처럼 섬세하게 비틀어서 보여주는 소설 또한 흔치 않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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