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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 읽기는 고전(苦戰)이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책을 한 권이라도 끝까지 독파한 사람이라면 고전의 쓴맛을 알 것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은 잘 씹지 않으면 넘어가지도 않고, 소화되지도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곱씹어야 하는 느린 음식’(slow food)이다. 요즘 같은 속도전 세상에 2300년 전 한 희랍인이 요리한 그런 불편하고 귀찮은 음식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몸에 좋다면 물짐승, 들짐승, 날짐승, 쓴 맛 단 맛 안 가리는 한국인이 마음에 좋다고 소문난 지중해식 식단을 외면하는 건 건강관리에 소홀한 처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식단을 펼쳐보자. ‘오늘의 요리는 최근 한국에 첫 선을 보인 에우데모스 윤리학이다.

제목은 에우데모스라는 사람이 책을 편집했거나 그에게 책이 헌정된 데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주제는 에우다이모니아’, 즉 행복이다. 그런데 희랍어로 행복하다는 말은 곧 잘 산다는 말이다.

그러니 국민 행복 시대잘 살아보세도 일종의 희랍식 콤비라고 할 수 있겠다. ‘행복이 선거에서 정치적 아젠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정 정도 사회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해서 물을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질문,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를 이 책에서 캐묻고 따진다. 그는 잘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7면으로 이어짐

하지만 한국말로 잘 사는 사람이 곧 부자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면 실망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어에 스며든 행복관은 사람이 잘 살고 못 살고를 돈으로 잰다. 행복의 척도는 돈, 이것이 한국 사회의 암묵적 합의 내용이 아닌가? ‘돈이 다는 아니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긴 하다. 돈이 있어도 명예가 없으면 폼이 안 난다. 그래서 많은 돈을 써서라도 명예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못 생겨서 불행하고, 그래서 헬스클럽에, 화장품, 성형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은 멋지고 잘 생긴 대중 스타들이다. 나아가, 자기 관리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건강을 챙긴다. 그렇다면 돈 많고, 명예 있고, 잘 생긴데다가 건강하기까지 한 사람은 마냥 행복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에 병이 있거나 마음이 추하며, 마음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할 좋음()은 돈과 명예와 같은 외적인 좋음도 아니고,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과 같은 신체적 좋음도 아니다. 그것은 심적인 좋음, 즉 덕()이다. 희랍어로 을 가리키는 아레테는 뛰어남과 훌륭함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뛰어난 지혜와 훌륭한 성품을 지니고, 그러한 지혜와 성품에 따라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 즉 행복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돈과 명예 등의 외적 좋음은 남이 가지면 내가 못 가지기 때문에 쟁탈의 대상이자 사회적 불화의 씨앗임을 간파했다. 그에 비해, 덕은 남이 가진다고 해서 내가 못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덕의 경쟁이 개인과 사회에 유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덕이 단지 남 좋은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 훈계로 그치지 않고, 캐묻고 따지고 나누고 합치면서 반성적이고 체계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그의 쓰고 딱딱한 논의는 우리 연약한 영혼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특별 식단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진감래라고 하지 않는가? 뒷맛이 그윽하고 단 것이 고전이고, 한 번 맛이 들면 잊을 수 없어 자꾸 손이 가는 것이 고전임을 맛본 자는 다 알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13.06.03 송유레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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