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정치학① 연재순서 1회 영토의 ‘고유성’ 2회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쟁점과 경과 3회 역사 이슈-영토분쟁과 내셔널리즘 4회 동아시아 영토문제 해법 5회 2013 동아시아-협력과 갈등의 사이에서 #.새로운 리더십, 치열한 영토분쟁 해법이 모색될 2013년은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해 그 불안정성이 점증하는 해가 될 듯 하다. 대학주보는 송석원(정치외교학) 교수의 연재를 통해 영토분쟁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형을 학술적으로 풀어본다. “역사의 젖은 양말은 시간에 의해서는 결코 마르지 않는다. 한일 문제는, 쓰레기를 채운 연못에 물을 부어 그 쓰레기를 감춘 것 같은 모습으로, 국교 30주년을 맞는다. 옛 상처는 그 연못 아래에서 녹슬지도 썩지도 않은 채 남아 있다. 그것들이 두 나라 사이에 가뭄이 들 때마다 ‘한일현안’이라는 이름으로 튀어나온다.” 위의 글은 작가 한수산이 한일국교 30주년을 맞는 1995년에 펴낸 《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라는 책 머리말 부분의 일절이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한수산의 탄식은 유효한 것 같다. 국교 수립 50주년을 목전에 둔 현재도 옛 상처는 썩지 않은 채 덧나고만 있다. 더욱이 한 번 가뭄이 들 때마다 그 정도가 깊고 심한 가운데, 가뭄 자체가 너무 자주 반복, 지속됨으로써 옛 상처에 새 상처를 덕지덕지 더해가고 있는 형국이다. 한·일간 첨예한 대립 심화 녹슬지도 썩지도 않는 ‘역사’라는 이름의 상처는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가뭄에 민낯을 드러낸 이래 여전히 현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일관계가 1965년 이래 가장 험악하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난 2012년 12월 16일과 19일에 각각 실시된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권이 등장했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등장은 한일 갈등이 상당히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알려진 그의 정치적 이상과 선거공약이 매우 국수적 내셔널리즘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현안 해결을 좀처럼 낙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일관계는 수차례의 갈등과 대립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처방전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양국관계는 출구 없는 첨예한 갈등이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양국 정부는 현재로서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결여돼 있는 것만 같다. 한일현안으로서의 ‘역사’문제는 독도의 영토주권,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기술,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안부 사죄 및 배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최근의 현안은 독도 문제이다. 2005년 3월 시마네현의회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한 1905년 2월 22일을 기념하여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어 표기)의 날’을 제정하는 현조례를 채택했다. 이후 매년 현 차원에서 기념식을 열어왔다. 러시아에 대해 북방영토 반환을 촉구하는 행사가 중앙정부 행사로 열리는데 반해 ‘다케시마의 날’은 시마네현이라는 한 지방에 한정된 행사였는데, 중의원선거과정에서 아베의 자민당은 중앙정부 차원의 행사로 격상시킬 것을 언명했다. ‘고유영토’라는 레토릭 집권 후 첫 기념일에 차관급을 참석시키는 선에 머물렀지만, 바로 이러한 조치로 인해 사실상의 정부 행사로 인식되게 됐다. 이제 행사의 주최가 누구냐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해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는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도 있으며, 특히 같은 시기에 중일현안으로 등장한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문제와 겹쳐 특히 일본 내에서의 영토분쟁에 대한 우익적 주장이 큰 세력을 얻은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독도의 영토주권을 주장할 때 사용되는 ‘고유 영토’라는 레토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유한 영토’라는 표현은 독도, 북방영토, 센카쿠=댜오위다오 등에서 한일, 중일, 러일 간에 공통되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거나 국제법상으로 보거나 명백한 우리나라의 고유한 영토이다”는 영토주권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당사국들은 영토가 자국 소유를 입증하기 위해 국제법상의 논리를 내세우거나 전래적으로 자국 영토임을 입증하는 고지도 등을 발굴해 내세우는 경쟁을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자국의 고유 영토임을 반증하는 자료의 제시에 매몰돼 정작 영토의 ‘고유성’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모두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영토 주권자로서의 자기인식이 명확하다. 와다 하루키의 연구에 의하면, ‘고유 영토’라는 주장은 북방영토를 둘러싼 러·일 교섭과정에서 일본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방영토가 ‘Japan proper’, 즉 일본 고유 영토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므로 일본 주권 하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후 ‘Japan proper’를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번역해서 사용해왔다.그러나 원래 ‘Japan proper’는 ‘일본본토’라는 정도의 의미이다. 이 경우 북방영토는 차치하더라도 홋카이도와 오키나와가 과연 일본본토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홋카이도는 아이누의 땅이었고 오키나와에는 엄연한 류큐왕국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더욱이 일본은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과정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그것이 일본 고유 영토라고 말할 때 ‘Japan’s inherent territory’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inherent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고유성, 영토주권 의지에서 비롯 한편, 우리나라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 ‘an integral part of the Korean territory’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영문 표기를 한국어로 옮길 때, 교섭 당시에는 ‘불가분한 일부’라고 했으나, 현재는 영문 표기는 그대로 쓰면서 한국어 번역을 일본처럼 ‘고유 영토’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토 주권을 둘러싼 갈등에서 한국과 일본 모두 똑같은 ‘고유 영토’라는 표현을 사용해 자국의 주권을 주장하지만, 양국의 논리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다. 이는 결국 어느 나라가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는가와 연동된 결과이다. 일본 주장의 저변에는 현재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인식이, 한국 입장의 저변에는 한때 일본이 불법으로 점령했었으나 마침내 회복한 영토라는 논리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영토의 ‘고유성’에 대한 주장은 영토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국의 주권 범위 안에 있었다고 하여 영토 주권을 확고히 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이는 중일, 러일 영토분쟁에서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영토의 ‘고유성’을 내세우는 논리에서의 쟁점은 무엇인가? 다음 회에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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