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빌어먹을 세상에서 자립을 외치다

 

상민 편집위원 gasi44@paran.com

 

 2008년 가을 장기하와 얼굴들의 싱글 음반 <싸구려 커피>가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자 난 조만간 인디 음악이 음악계의 주류가 되리라 굳게 믿었다. 곧이어 검정치마와 국카스텐이 혜성처럼 등장해 열광을 받았을 땐 더욱 그렇게 믿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2011년이다. 그 사이 장기하와 얼굴들은 정규 1집을 내놓았고 검정치마는 소속사를 옮기면서 리패키지 음반을 출시해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국카스텐은 작년 말에 새로운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을 인디 음악이 대세를 잡았다고 판단하기엔 무척 애매하다. 잘되는 뮤지션은 무척 잘되지만, 안 되는 뮤지션은 안 된다. 홍대 라이브클럽 몇 곳이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사라졌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에는 별 언급도 안하던 매체들이 부고 소식에 너도나도 인디 음악의 활성화를 부르짖고, 창작자 위주로 수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친다. 글쎄다. 단순히 인디 음반을 사는 것만으로 인디 뮤지션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고 있던 차에 홍대 앞에서 노래를 하던 뮤지션 몇몇이 모임을 결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려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이라는, (정확한 명칭은 ‘자립음악생산자조합 준비모임’이지만 이 글에서는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자기네들이 스스로를 지칭한대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이름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색이 흘러나오는 단체를 만들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고, 뭐하는 사람들일까? 어쩌다보니 나는 우연히 경희대 안에서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언젠간 인터뷰를 하리라 나 혼자 속으로 깊게 다짐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번 호를 통해 정식으로 인터뷰를 갖게 되었다. 때로는 욕을 내뱉고, 때로는 각종 개드립을 일삼는 이들이지만 꽤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그 날의 현장으로, 지금 당장 뛰어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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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오후 3시, 네스카페 홍대점

 

- 일단 자기 소개부터 해주세요.

 

장성건 (이하 ‘장’) 밴드 ‘밤섬해적단’의 베이스 겸 보컬을 맡고 있는 장성건입니다.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편선 (이하 ‘단’)  음악가이구요. 단편선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자립음악생산자조모임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고요. 자유 기고가 겸 공연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 : 그런데 정작 단편선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 어쩌다가 이런 모임을 만들게 되었나요.

 

 홍대 두리반에서 음악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물론 두리반은 재건축 문제로 농성하는 공간이지만, 어쩌다 보니 클럽과 비슷한 곳이 되었죠. 매주 토요일마다 뮤지션들이 자체적으로 공연을 열고 있어요. 그걸 작년 2월부터 하다가, 5월에 노동절 기념행사로 <Party 5+1>을 열었는데 사람이 무척 많이 오더라고요. 무려 3천명이었나. 그 때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생각하게 되었죠. 그리고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이 이 결과물이고.
사실 한국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이 성공한 적이 없어요. 협동조합의 정의가 각자가 경제적 또는 문화적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협동하는 사람들의 모임, 뭐 이런 건데. 음악가들이 각자의 욕구가 있겠죠? 그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말하고 보니까 동어반복이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음악을 하는데 현재 여건이 참 좆같아요. 그걸 우리 손으로 해결하고자 한 거죠.
성건이 말에 덧붙이자면, 많은 형태 중에서 굳이 생산자 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음악을 하는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공연을 하는 장소, 음반을 내는 레이블, 그리고 그것이 유통되는 형태. 물론 그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지만 먼저 그것들이 사 독단적으로 운영이 되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둘째로는 레이블 시스템으로 지금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거든요. 지금 우리가 협동조합을 만든 것에는 레이블을 세우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긴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레이블만이 아니라, 유통되는 구조적 한계를 타파하는 거죠.
자생적인 구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직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확실히 말하긴 곤란해요. 한 쪽에서는 모임에 참여하는데 진입 장벽을 가지길 원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아예 장벽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안에서 저같이 모든 민중에게 음악 공연할 자유를 하자는 사람도 있고 또는 (붕가붕가레코드처럼)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 같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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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홍대 씬1)을 어떻게 보시나요?

 

홍대 씬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씬을 자생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창 논의되고 있는 지역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있는 석관동 쪽이고. 솔직히 홍대 너무 멀어요. 그나마 최근엔 두리반에서 잘 수 있으니까 최근에 많이 오는 거지. 왜 지역에서 음악을 못 즐기고 무조건 홍대로 가야 하는 건가요? 홍대에서 문화 권력을 독점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이득 보는 건 어디냐면 클럽 주인도 아니고, 레이블 사장도 아니고, 가수도 아니고, 클럽 건물주에요. 월세 계속 높이고, 재개발 들어가고.

 

- 사실 월세가 계속 오르는 것은 홍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로, 압구정, 신촌 등에서 일어나는 문제잖아요.

 

악순환이죠. 옛날에는 신촌에 예술가가 많이 살았는데, 신촌이 인기가 많아지자 나이트클럽 같이 쉽게 돈 벌수 있는 곳이 생겼죠. 그리고 예술가들이 쫓겨나 압구정으로 갔어요. 그리고 다시 압구정 월세가 오르자 쫓겨나 대학로로 가고, 다시 월세 오르고 쫓겨나 홍대로 갔고. 지금은 문래로 가고 있어요.
주목해야할 부분이 KT&G가 홍대에 상상마당 건물을 세운 거예요. 처음 만들 때는 인디 씬이나 대안 문화를 알려나가자- 라는 취지가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쪽 주변 지가가 올라 버렸어요. 게다가 거기서 공연하는 사람들도 인기 많은 인디 뮤지션 위주고요.
KT&G 측에 그 문제를 제기하니 “인디도 이젠 자본과 함께 해야 한다.”고도 말하더라고요.
상상마당 지하 라이브 홀이 스탠딩으로 400명 정도 들어올 수 있어요. KT&G가 아예 인디 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쪽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인기 많은 사람들 위주로 라인업을 꾸리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거기나 롤링홀 같이 중간 규모의 클럽은 잘되는데, 정작 그보다 작은 클럽이 계속 망하고 있고.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결국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홍대는 문화 식민지가 되었고. KT&G는 동인도회사인 셈이고. (웃음)
장르가 획일화 되는 거죠. 제가 포크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하거든요. 제 음악이 공연되길 바라는 클럽은 별로 없어요. 관객 많이 안 올 장르라는 사실을 아니까. 어쩔 수 없는 자본의 생리인 건 알지만. 그래서 도출된 것이 생활협동조합이었어요. 물론 음악의 특성상 완벽하게 협동조합 형식에 어울리지 않긴 한데, 이런 형태를 통해서 일상적인 결합이나 정치적인 운동도 가능하단 말이죠. 예를 들어, 우리가 직접 공연장을 운영해서 노동자를 고용한다든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생활협동조합 말고는 별 방법이 없었다고 할까요. 지금까지 저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홍대에서 다양한 대안 실험을 했지만 전부 결과가 안 좋았어요. 자본에 포섭되거나, 자본이 없이 망하거나 둘 중 하나.
1980 ~ 90년대 생활협동조합 식보다는 조금 덜 순진하게. 지역 사회와 연대를 하면서. 계속 접속 채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모임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는 없나요? 예를 들어 정치를 강조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던지.

 

신경 안 써요.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때 계속 말하는 이야기지만, 전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고 봐요.
전 단편선하고 생각이 좀 달라요. 정치적인 것을 내세우기 보다는, 먼저 생계 문제를 내걸어야 해요. 물론 둘 다 떼놓을 수 없는 것이긴 한데, 솔직히 한국에선 정치가 무척 부정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으니까. 뮤지션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큰 법이고. 일단 판을 늘리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다 가입할 필요는 없지.
그렇긴 한데 일단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니까. 굳이 구호를 생각해야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뮤지션 중에선 부자도 많고 메이저로 뜨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고 한 거예요. 이 씬에서 애정을 갖고, 계속 음악을 하고, 거기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요. 계속 지랄하는 사람은, 그냥 계속 지랄하라고 하세요.
정치적인 면을 싫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정치 자체를 싫어하거나, 냉소주의자거나. 솔직히 후자는 무시해도 되요. 어차피 그 쪽 친구들은 그냥 키보드로 싸움만 하는 친구라서.

 

- 다른 단체와 연대할 생각은 있으신가요.

 

사실 우리도 연대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제 코가 석자인데. 하지만 저희와 연대를 원하는 단체가 생겨 먼저 찾아온다면 우린 반길 거예요.
기본적으로 저희는 다른 단체와 연대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아요. 다만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연대 결정 여부를 생각하는 거죠.
다만 지역, 또는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게 중요한 거지. 아까 말했지만, 석관동에 동북부 친구들과 로컬 씬을 구성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어요. 한예종 지하 공간에 ‘클럽 대공분실’을 세운 것도 그런 운동의 차원이었으니까. 아니, 공연 보러 홍대까지 가야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이태원에서도 문화운동가 최정화 선생님이 로컬 씬 운동을 벌이고 있고, 해방촌에서 게스츠하우스 빈집 같은 게 있긴 해요. (http://blog.jinbo.net/house/) 하지만 멀어서 연대는 못하고 있어요. (웃음)

 

- 지금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구심점은 두리반입니다. 하지만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곳이에요. 설사 두리반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두리반이 지금 같은 공간으로 남아 있기는 어렵다고 보거든요. 구심점을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가요.

 

누군가 저희를 보고서 아나키즘 운운하던데, 두리반에 있는 사람 생각은 대부분 이래요. 두리반 주인이 돈 받고 나가야지. 그게 사회 정의이자 진보에요. 어찌 보면 우리는 구심점을 없애는 게 목표라고 할까.

 

- 그런데 두리반에서 실험적인 공연이 많이 있었잖아요. 두리반이 사라진다면, 어디서 그런 공연을 할 수 있죠?

 

다행히 두리반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 저희들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을 많이 만났어요. 그 중에선 클럽 주인이나 대안 공간 운영자도 있었고. 없어지면 그런 곳에 가서 공연을 이어가야죠.

 

- 두 분은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었나요?

 

그건 말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음악 자체가 목적인데. 그건 자위 하는 사람에게 왜 자위하냐고 묻는 거하고 같은 질문이거든요.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거에요.

 

- 다른 뮤지션들의 자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립하고 싶은 사람이 자립해야지. 그냥 엄마하고 같이 살고 싶다면 그 사람 생각 존중해야 해요.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강제로 자립하자고 조르는 게 폭력이에요.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조직하고, 네트워크 짜고. 그게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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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모임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석관동에 온갖 쓰레기 같은 사람들, 저희 같은 사람들이 앞가림 하면서 살아가는 둥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흰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을 뿐인데. 그냥 음악을 하면서 공유하고 싶을 뿐인데. 굳이 최고를 추구할 이유는 없어요. 어찌 보면 지금 이 모임도 일종의 자위일 수 있는데, 전 그렇게 생각해요. 성건이와 비슷한 생각인거죠. 각자 사는 곳에서 각자의 음악을 하고 살아가는 것.
궁극적으로는 서울 밖을 벗어나는 게 목표기도 하고.
원주 쪽으로 가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 쪽 생활협동조합 가입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기도 하고. 미친 거지. (웃음) 행복하게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혼자 하는 음악보단 같이 하는 음악이 행복하잖아요. 지금 입장에선 음악 말고 어디에 제 삶을 걸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지금 만큼은, 음악으로 고민을 하는 거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이지.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 모임은 안 망할 거예요. 이 모임에 모인 사람 말고도 다른 뮤지션들도 슬슬 자립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제 곧 발대식 해야죠.
단 아직 별 준비도 안 했지만. (웃음)

 

 

1) scene, 음악계에서는 음악 활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장소나 판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단편선은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04학번에 재학 중인 포크 뮤지션이다. 작년에는 정경대 총학생회 집행부 활동도 같이 했다. 음악 웹진 《보다》(http://bo-da.net/) 등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 기고자이자 공연 기획자이기도 하다. 물론 단편선은 필명이다.

 

장성건은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05학번이자 그라인드 코어 밴드 밤섬해적단의 베이스 겸 보컬이다. 사실 원맨 블랙메탈 밴드 폐허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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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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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고황 [고황 새내기호 ver. 독립] 빌어먹을 세상에서 자립을 외치다 file
고황
2011-03-07 2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