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나 ‘계산’이라면 학을 떼는 기자에게 어느 날 복잡한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우리학교 부속 의료기관의 결산 내용이었다.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의료기관 부채의 총합이 2012년 결산공고 기준으로 2,700억 원을 넘었으며, 특히1년 내에 갚아야 할 부채인 유동부채 비율이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았다. 낯선 용어가 많은 대차대조표였지만, 꽤나 심각한 문제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지난 1일에 열린 경희의료원 발전을 위한 노·사 합동 연찬회에 갈 때는, 당장의 재정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이 논의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연찬회에서 오간 내용은 생각보다 추상적인 이야기에 머물렀다. 거의 대부분의 발표가 실질적인 수치와 통계를 통해 객관적으로 위기를 인식하려고 하기보다는 ‘소통의 강화’, ‘경쟁력 있는 연구중심 병원’과 같은 이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들만 끊임없이 이어졌다. 실행이 가능할 지는 나중의 문제지만, 모든 안들이 정말로 현실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패널 토론에서도 한 패널이 ‘내용이 너무 진부하다’며 ‘현상은 모두가 알고 있고, 이제는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지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을 정도였다. 연구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은 분명히 우리학교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후마니타스 병원’으로 대표되는 소통의 강화도 타 대학병원과 차별성을 둘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이를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도 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비단 경희의료원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대학병원이 처한 위기도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10년 이상을 바라봐야 할 계획만 논하기보다는, 당장 시행 가능한 사업이나 비효율성을 개편할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때다. 물론 올바른 비전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안들에 대해 구성원이 공감하고 있고, 당장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온 상황이라면 탁상공론보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연찬회’라는 자리의 특성상 맞지 않은 담론일 수도 있지만, 연찬회 밖에서 논의할 만한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도 오고 갔다면 여러 구성원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더욱 유익한 자리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정말 쉽다. ‘야구팀을 잘 운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라는 질문에는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팀의 약점은 무엇이며, 어떤 투수를 영입해야 할 지’ 같은 질문에는 아무나 섣불리 답을 내놓기 어렵다. 연찬회에 참여한 구성원은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만큼 앞으로는 보다 실질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
|
글 수 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