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0

 

 

이번 글은 '大學文化 질문이라는 장소 7화 (최종화)'에 이어서 大學文化 칼럼 "질문이라는 장소"의

연재를 마치는 결언적인 글입니다.

 

글의 나머지 부분은 대학사회에서 학우여러분이 함께 써가시기를 기원하면서

"질문이라는 장소 - 대학적인 질문을 위하여"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부파일의 경우 오타나 부족한 부분을 스케치하듯이 수정하였던 파일을 다시 올립니다)

 

 

 

 

 




식자무식 大學文化(대학문화) 칼럼 

  전  체  목  차

질문이라는 장소 -대학적인 질문을 위하여-

0. 숫자0의 위상에 대하여
1. 질문이라는 (불)가능성
2. 질문의 장소는 어디인가? 

    2.1. 내재적 간극과 극소차이, 그리고 변혁의 가능성 
3. 대학사회의 현재와 오래된 미래 
     3.1. 두 개의 논리, 하나의 이면
     3.2. 두 개의 지식, 이중의 곤궁
          3.2.1. 제3의 지식과 자기-반성성
          3.2.2. 질문의 자기-분열 : 이중의 곤궁에서 시작하기
     3.3. 최소차이로서의 종속과 적응 (혹은 재-구성)
     3.4. 상실된 특이성과 그 사례적 전형
          3.4.1.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3.4.2.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정치는 질문하고, 정치는 질문되지 않는 장소에서 존재한다.
          3.4.3. 정치학 교과과정에 있어서의 특이성 
               3.4.3.1. 대학 별 정치학 교과과정의 분포
               3.4.3.2. 대학 별 정치이론 부분의 특이성 
               3.4.3.3. 두 개의 징후들, 이중의 곤궁 그리고 정치학의 윤리
          3.4.4. 질문의 귀환을 요구하기 
               3.4.4.1. 21그람의 가능성
                    3.4.4.1.1. 방향성 
               3.4.4.2. 매개하는 잠재적 가능성, 외양하는 불가능성 
                    3.4.4.2.1. 방법과 주체 그리고 매개 
     3.5. 잃어버린 매듭의 제도적 실현을 위하여 
          3.5.1. 상실된 특이성, 귀환의 장소는 어디에…… 
          3.5.2. 대학의 수준 : 교양학 
               3.5.2.1. 대학교육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것 : 창의적이고 중층적인 사유 
          3.5.3. 질문에의 충실성과 구체적 종합화라는 특이성

          3.5.4 질문의 교양학, 유령의 질문학 
               3.5.4.1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사이’ : 문화연구와 IDA과정
               3.5.4.2 교양학의 변신을 위한 현재적 시도
4. 서문 - 아름답기 위해서는 동시에 아름답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大學文化 칼럼] 질문이라는 장소 -대학적인 질문을 위하여- 결언

 

 

 

리는 대학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학생이기에 어떤 장소로 대학을 재편할 것인가를 우리가 선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어떤 대학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 학생들은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대학적인 대학을 구성하는 것에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질문이라는 화두를 통해 아주 작은 차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질문의 공동체로서의 대학의 모습을 제안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우리들은 대학에 대한 나름의 기대나 이상을 적게라도 품고 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이나 기대가 깨어지는 것은 조금만 생활해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이겠지요. 그러면서 기존의 대학생활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러는 와중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상적 모습이 이전부터 언제나 대학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80년대 90년대에는 대학사회에 광장이 존재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대학적인 모습들이 사전에 대학이라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그러한 모습이 상실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그러한 대학적인 광장의 모습은 사전에 우리들에게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대학적인 모습들을 학교와 교수, 그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으려는 과정 속에서 마치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보였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대학적인 특이성이란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가려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순간순간 드러나는 광채였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과거에는 그러한 대학적 특이성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상실되었다고 그러한 시절로 돌아가거나 회복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실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사전에 주어진 것은 없었고, 마치 그렇게 보이던 것들은 실제로는 현재 우리가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결과들로서 구성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결과들에게 책임감을 가지려는 마음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대학 교정을 걸을 때마다 보게 되지만 교시탑에 적혀있듯이 경희대학의 교시는 문화세계창조입니다. 창조는 기존구조로부터의 분리가 그 자신의 가능조건으로서, 자유의 가능성을 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와 자유, 무언가 거대하고 어려운 단어같이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조금 다른 생각과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이것이 우리가 자주 듣는 창조성‧창의력‧상상력‧자유 그리고 질문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보통 질문이란 단순히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되는 자에게 대답으로서의 지식을 구하는 행동이라는 상투적인 개념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대답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차원에 한정된 인식의 결과인 것이지, 그러한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해본다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컨데 질문이라는 개념을 좀 더 신중히 생각했을 때, 그것은 체계가 대답할 수 없는 장소에서 출현하는 스캔들로서, 기존에 주어졌다고 가정되는 대답과 질문의 악순환을 산산히 부서지게 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대학적인 질문이 대학-공동체의 한 가운데에서 귀환할 때, 우리는 그 구성원으로서 성찰하는 학생, 책임을 다하는 학생사회, 자유의 반성적 연대로서의 대학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때야 우리가 구조적 억압에 그 내부적 토대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대학적인 대학으로, 아주 작은 차이지만 지금과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계에 대해 사유하려는 질문을 구성할 수 있어야, 기존의 가치체계가 온전히 지배할 수 없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으며, 그러한 질문에 대한 질문으로서 실재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곳이 대학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사회 속에서 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질문이라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 대학이야말로 그러한 장소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반적으로 사회 속에서 질문자로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대학적인 것의 귀환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질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어떤 질문을 하는가를 물어야합니다. 어떤 경우든 질문이 자기 시대의 소산이라는 언명을 상기해보았을 때, 역사적 변혁을 추동한 대학적 성취는 그 시대의 사상, 문화에서 시대적 한계를 드러내는 새로운 진리라 할 만한 것을 구성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새로움을 수용하는 중요한 경험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다시말해서 이러한 변혁은 표면적인 입장의 교체만이 되풀이되고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시대적 한계 속에서 대립과 정립이 계속되는 상황 자체를 타개해 보려고 시도한 결과로서 출현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시대 자체의 한계지점을 사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야 말로 사회에 있어서 대학적 변혁을 그 아래에서부터 추동해온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학은 스스로를 질문자로서 자처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질문을 구성할 수 있어야하며, 자신이 제기하는 질문과 대학 자신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합니다.

또한 만약에 대학이 기존의 사회구조에 구성요소를 보충하는 동시에 사회 자체를 재-구조화할 수 있는 질문의 장소로서 존재하고자 한다면, 사회 속에서 아주 작은 차이지만 결정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혹은 그러한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학생들을 대학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할 수 있어야, 질문이라는 장소로서 대학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학의 커리큘럼은 대학이 어떤 학생을 사회로 배출하는 가에 있어서 학생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재학기간동안 무엇을 어떻게 배우게 되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학은 자신의 교육과정과 스스로에게 자기-성찰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합니다. 이러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대학은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질문을 품고 있는, 그렇기에 하나의 시대를 열어져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학생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질문의 산물이 바로 대학적인 커리큘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 대학교육에서 최고의 화두는 교양교육이었습니다. 피상적인 교양교과과정을 개편하려는 기획들이 여러 대학에서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편과정 속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하고 시대적 한계를 사유하려는 문제의식이 들어있지 않다면, 개편 이후의 대학 커리큘럼 또한 단순히 우리가 이미 알고 느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서 대학 교양교육과정이 단순히 무미건조하고 비정치적이거나, 지금을 망각하기 위한 회피로서 과거의 미덕과 정전의 불가침성을 추구하는 정전적 교양주의에 한정된다면 이는 폐쇄적인 자기상찬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남는 것은 단지 한 웅큼의 전문주의 집단과 몇몇의 그리스고전, 계몽주의 작가들로 구성된 한 웅큼의 읽기 목록,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외면하는 상대적으로 사유에 위협적이지 않은 보수적인 길디 긴 도서목록들일 것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고여서 썩는 것처럼, 단테 강독이 얼마나 굉장한 경험이고 중요한 일인가 하는 식의 역사적 교양주의가 아닌, 사유의 지적운동으로서 교양학이 품고있는 미래로서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교과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약 대학마저도 사회를 그대로 재현하는 도구로서 그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사회 속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가로 평가한다면, 사회 자체를 성찰 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대학이 죽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이라는 성찰의 가능성이 죽었다는 것은 그 사회에 있어서 더 이상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찰할 것이 없으니 더 이상 변화될 이유도 없겠지요. 그러나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메타포는 죽음입니다. 다시말해서 사회 속에서 대학이라는 성찰의 죽음은, 사회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성찰의 죽음 자체를 사유하는 것, 이러한 자기-성찰의 순간, 사회가 자신의 죽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지금과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사회 속에서 아주 작은 차이지만 결정적인 변혁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의 교양학, 유령의 질문학으로서의 교양학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자기-성찰적인 질문을 구성하는 것을 통해, 이미 항상 있었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변혁의 가능성을 외양하게하는 대학적인 커리큘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시대적 한계를 사유하려고 했던 과거의 질문들 속에서, 아직 대답되지 않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금 사유하는 것을 통해, 미래를 결정하는 과거의 좌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자기-성찰적 질문을 구성하는 것. 이를 통해 자유로 가는 과정이 바로 신체에 각인된 향수처럼 제거할 수 없는 대학적인 특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야기되는 인문학의 위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들리던 한탄일 뿐이며 그 해결 방안이 결코 위대한 작가와 위대한 텍스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학은 숭배와 억압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학 내부의 인문학의 위기와 대학 외부의 인문학 르네상스라는 대비되는 상황도 자유정신이며 자기-반성성이라는 질문으로서의 인문학적 정신을 외면한 결과가 아닐까요. 이제는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인문학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의 근거는 지식이 아닌 질문이라는 자기-반성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문학이 사회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에 등을 돌리고 텍스트에만 전념하게 된 한 이유를 냉전과 냉전 이후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읽어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작금에는 그러한 시대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는 인문학의 자기성찰이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성찰의 죽음이 선언되는 오늘날에 있어서 만약 인문학이 단순히 시대적 반영에의 국한이 아닌, 시대적 한계를 그 중심에서부터 폭발시킬 수 있는 사유를 재-정립할 의무를 가지며, 현재적 교착상황을 면밀히 읽어내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존재조건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인문학 스스로가 자신의 장례식인지도 모르고 첫 삽을 뜨는 희극처럼, 죽어있는 인문학에게 두 번째 죽음을 맞게 할 것입니다. 만약에 인문학이 자기 자신이 인문학임을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러한 죽음을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인문학의 지적운동으로서 근본적인 자기-성찰을 요구할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희대학교는 2011년부터 시행될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교양대학을 세우기위한 대대적인 교양 교과과정 개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론으로서의 교양학을 커리큘럼 개편의 축으로서 제시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인문학 중심의 교양학 강화라는 명분이 아닌, 교양학 자체의 전면적인 자기-성찰을 고백해야한다는 것이며, 질문이 없다면 교양도 없다는 선언에서부터 대학의 역할을 시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절합되는 전범으로서 문화연구라는 교과영역이 존재합니다. 서구에서는 1960년대의 격동 속에서 인문학의 자기성찰로서의 이론이 태어났습니다.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반전운동의 흐름을 타고 격렬해진 서구 학생운동은 이러한 이론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은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복무하는 인문학을 격하게 거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문학이 전면적인 자기성찰을 감행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문화이론입니다. 이러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연구전공은 교양(culture) 자체에 대한 자기-성찰적 탐구로서 인문․사회․문화․역사․예술․과학기술 등을 간-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문화연구 전공이 교양학 재-편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는 대외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경희대학에서 준비하는 교양대학은 유수한 외국대학들이 기본적인 대학의 역할로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 자체에서는 획기적인 시도일 수 있지만 세계적 혹은 서양의 시선에서는 후발적으로 대학의 기본적 틀(단순히 제도적인 면이 아닌)을 갖춘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실제로 지식의 융합이라는 차원에 그치게 될 경우 대학적인 것의 외양이 아닌 단순히 교양과정 혹은 인문교양이 강화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외국대학들이 통섭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교양과정(Liberal arts)을 제시하는 것에 견주어, 경희대학은 통섭의 핵으로서 (IDA과정이 포함된) 문화연구 전공(Cultural studies)을 과정으로서 개설하는 것을 통해, 한국에서 교양대학의 전범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세계적인 교양대학으로서의 지평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교양학 과정이 대학교육의 공통과정으로서 누빔점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과거에 시대적 한계를 사유하는 질문을 구성하려고 했던 시도들과 오늘날의 질문들은 무엇이며 어떤 물음을 던지고 있는지, 그러한 질문들을 반복하는 것을 통해서 세계와 자신에 대한 태도를 정립할 수 있는 사유능력을 구축할 수 있게끔 교과과정을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교양주의나 분과학문의 기초지식 습득과정, 혹은 단순한 지식의 융합이 아니라 지식자체의 한계를 어루만지는 사유로서 교양과정의 전범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러한 역할을 문화연구 전공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렇듯 한계를 사유하는 반복적인 시도들로서 교양학 과정이 개편된다면, 누빔점과 같은 위상을 지닌 질문의 교양학으로서 전공지식체계들을 매개하는 대학교과과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질문이라는 불가능성, 한계를 어루만지는 사유를 자신의 심장으로 품고 있는 교과과정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럴 때 대학사회는 사회구조에 구성요소를 보충하는 동시에 재-구조화하는 최소차이이지만 결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질문의 공동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 학생들은 대학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학생이기에 어떤 장소로 대학을 재편할 것인가를 우리가 선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어떤 대학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 학생들은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대학적인 대학을 구성하는 것에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듯 여러분께 아주 작은 차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질문의 공동체로서의 대학의 모습을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시도하려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이러한 제스처가 가지고 있는 불확정성은, 오래된 미래로서 대학적인 것을 대학이라는 장소의 한 가운데에서 요청하려한다면 우리가 껴안고 나아가야하는 부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우리에게 진실해져보려 해보아야 합니다. 상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사전에 주어진 것이 없다는 사실과, 현재는 냉소주의처럼 우리들이 스스로 만드는 행위의 결과이자 원인이기에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진실과 대면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현재의 상황은 단지 누군가의 책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기위안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앞으로의 교양개편과정이나 학생사회가 대학적인 특이성을 재-구성하려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이 글을 읽으신 학생여러분과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입니다. 다만 2011년이라는 경희대 교양개편이라는 시점에 대학사회와 학생사회에서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공유되기를 희망하면서 대학문화 질문이라는 장소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대학적인 것은 만들어진 것(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외양한다."

 

 

 

감사합니다.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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