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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식자무식識者無識입니다.  (__)

이거 HTML 스크립트가 다시 말썽을 일으켰군요;;  첨부된 사진이 맨위에 올라오게됬네요.... 


 

이번 4화는 3화에 이어서  '3.4.3.3. 두 개의 징후들, 이중의 곤궁 그리고 정치학의 윤리' 부분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3화에서는 종속과 적응의 차이점은 한 끝 차이지만 억 겹의 차이가 있으며, 선택지 자체를 선택하는 것으로서의 적응은 기존에의 적응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립하는 재-구성을 말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한 한 끝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는 것이었고, 현재 대학전공 중 사례적 전형으로서  정치외교학 교과과정에서 과연 그러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정치란 기존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치안의 정치가 아닌 권력 자체의 한계를 사유하는 질문의 정치로서 그 자신의 특이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보았지요. 정치학 교과과정을 분석해본 결과 안타깝게도 제가 속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는 카페인 없는 커피, 앙꼬없는 진빵처럼 정치를 정치이게하는 질문이라는 특이성이라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4화에서는 질문의 부재와 행동의 부재라는 두 개의 징후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정치학의 윤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질문의 귀환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외부적 개입이 불가능하다면 내파적인 개입만이 그 해법이라는 것을 되세기면서, 과연 그것을 어떻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질문의 귀환을 요구할 것인지를 다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대학문화 칼럼 "질문이라는 장소" 4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체는 이러한 질문이 질문 자신과 조우하는 자기-반성적인 선회의 과정 속에서

불가능한 실재적 질문 그 자체의 모습으로 섬광처럼 터져 나온다.

 

 

"학생회 속에서 학생사회라는 광장을 여는 것은 동시에 학생사회 내에 매개를 형성하는 것이다."  

 

 

 

 

 

 

식자무식 大學文化(대학문화) 칼럼

11월 23일    목   

질문이라는 장소 -대학적인 질문을 위하여-

0. 숫자0의 위상에 대하여
1. 질문이라는 (불)가능성
2. 질문의 장소는 어디인가?
     2.1. 내재적 간극과 극소차이, 그리고 변혁의 가능성
3. 대학사회의 현재와 오래된 미래 
     3.1. 두 개의 논리, 하나의 이면
     3.2. 두 개의 지식, 이중의 곤궁
          3.2.1. 제3의 지식과 자기-반성성
          3.2.2. 질문의 자기-분열 : 이중의 곤궁에서 시작하기
     3.3. 최소차이로서의 종속과 적응 (혹은 재-구성)

     3.4. 상실된 특이성과 그 사례적 전형

          3.4.1.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3.4.2.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정치는 질문하고, 정치는 질문되지 않는 장소에서 존재한다.

          3.4.3. 정치학 교과과정에 있어서의 특이성 
               3.4.3.1. 대학 별 정치학 교과과정의 분포

               3.4.3.2. 대학 별 정치이론 부분의 특이성

               3.4.3.3. 두 개의 징후들, 이중의 곤궁 그리고 정치학의 윤리

          3.4.4. 질문의 귀환을 요구하기

               3.4.4.1. 21그람의 가능성

                    3.4.4.1.1. 방향성

               3.4.4.2. 매개하는 잠재적 가능성, 외양하는 불가능성

                    3.4.4.2.1. 방법과 주체 그리고 매개

 

 

 

 

3.4.3.3. 두 개의 징후들, 이중의 곤궁 그리고 정치학의 윤리

 

러한 점들을 고려하더라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과과정에 있어서 질문이 사라진 정치학 혹은 질문이라는 정치의 종언 혹은 죽음을 말하는 것은 매우 섣부르고 경솔한 언명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현대이데올로기론, 민주주의론을 포함하여) 현대정치이론/사상이 교과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상당히 징후적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개설이 되어있어도 영미식 정치학의 영향이 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강의내용에 따라 다르겠으나) 오늘날의 질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정치적 곤궁을 돌파하려는 질문을 과연 대면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적인 변혁의 시기에 당대에 요구되는 질문과 대면했을 때, 과연 우리는 그러한 현재적 곤궁을 돌파할 시도로서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실제적으로 우리는 질문과 마주했을 때, 기존의 지식 체계에 맞지 않으면 현재적 곤궁을 대면하려는 그러한 질문들을 거부 혹은 회피하기 쉬우며, 때로는 현재적 곤궁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구되는 것은 현 지식체계에의 이데올로기 비판일지도 모르겠다) 2008년 촛불시민들이 컨테이너박스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듯 개혁적이고 변혁적인 기획이나 의견들을 제안하고 고려가 가능한 정치문화적 토대가 부재한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 혹자는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질문을 알지 않아도, 과거의 질문만을 공부하는 것을 통해 현재적 상황에 대답할 수 있으며, 질문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과거에 제기된 질문이지만 현재에도 대답되지 않는 질문들이 있을 것이며, 과거의 질문들을 통해 현재의 질문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데 그렇게 중요한 질문이라면, 더더욱 남겨져있는 과거의 질문들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오늘날의 질문을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오늘날의 질문들은 지금 여기에서 대답될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들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과거에 대답될 수 없어서 현재까지 남겨진 질문이, 과거에 대답으로 제시하려했었던 다양한 지식들로 가려져버리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오늘날의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거의 질문들이 당시에는 대답될 수 없는 질문들일 수 있겠지만 현재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과거의 질문들만을 알고 오늘날의 질문이 부재한 상황은, 현재는 과거의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대답들이 축적된 결과물이기에, 아직 대답되지 않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려했지만 그러한 질문들을 봉합해버린 과거의 다양한 지식들 중에서 단순하게 선택하는 적용적인 태도로 귀결될 수 있다. 또한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과거의 질문들을 통해 배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여도, 그렇게 구성된 질문들은 과거의 질문들에 대해 질문하려는 오늘날의 질문들을 경유하거나 그에 대해 답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징후는 또 다른 곳에도 있다. 지난 4년간 정치학과 대학원 수업에 있어서 교과과정 상에는 존재하지만 학기 중에 개설되지 않는 유령의 교과목이 되어있는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고 철학의 윤리를 천명한 마르크시즘 강의가 그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학에 있어서 변혁적 행위에 대한 사유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치 그것은 이미 항상 도래해 있지만, 영원히 도래하지 않아야할 메시아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정치의 죽음에 대한 첫 번째 징후는 질문의 부재이며, 두 번째 징후는 그로 인한 행동의 부재(유사-행동에의 강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정치학의 윤리는 무엇인가. 정치학과에 정치가 존재하는가.) 어쩌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늘날의 정치학은 질문의 부재와 (그로인한) 행동의 부재라는 이중의 부재가 만나는 곤궁에서부터, 동시에 결핍된 질문과 결핍된 행동 사이에서 만나는 이중의 결핍이라는 곤궁 속에서 시작할 것을, 그리고 이러한 이중의 곤궁과 대면하고 그러한 곤궁 속에서 그 중핵을 꿰뚫고 나갈 수 있는 질문이라는 자기-반성성의 외양을 요구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정치학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라는 윤리가 아닐까…. 아마도 우리는, 메시아는 그가 도착한 다음날 도래할 것이라는 카프카의 진술처럼 혹은 메시아가 도착했을 때 그에게 메시아는 언제 올 것이냐고 물어야한다는 블랑쇼의 진술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정치학의 장소에는 질문이라는 정치적인 것이, 이미 항상 귀환해 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질문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언제나-이미 도래해있지만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기에, 지금-여기에서 화급히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윤리적 언명으로서 말이다.


한편, 여러 대학과 비교하면서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교과과정은 상당히 단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학과의 기본적인 토대인 정치과정이 다른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고, 제도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와 문화, 여성과 정치 등의 간-학제적 시도 또한 외면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세계화와 국제화라는 위상에 걸맞는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었다. 다만, 정치학과의 특이성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 빠져있을 뿐이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카페인 없는 커피와, 지방이 없는 다이어트 코크를 즐겨 마시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특히 개인과 사회 그리고 질문과 행동에 있어 최전선에 있을 수밖에 없는 정치학에서 (오늘날의) 레디컬한 질문이라는 중핵과 그리고 (불)가능성의 화두가 사라져간다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부과정을 이수한 후 국제사회에 진출하여 세계의 인재들과 토론할 경우, 그들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대등하게 대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오늘날은 과거에 한국의 대학생이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말하던 시절이 아니며, 제도적 지식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들어 제도적 지식에 더하여 제도에 있어서 그 가능성의 조건을 사유하는 것이 요구된다.) 오히려 정치학이라는 학문의 윤리성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질문이 가능한 자기-반성성이라는 질문필요충분조건으로 포함하고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자기-반성성을 포함하고 있어야, 단순히 거리를 두고 문제제기만하는 것으로 그치거나 사회 혹은 외부에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며 도덕주의적 죄의식(“우리는 죄의식에서 탈출할 뿐만 아니라 죄의식 속으로 탈출하며 그 속에서 도피처를” 구하는 것)에 의해 질문을 외면하고 유사-행동만을 계속하는 상황우회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속에 질문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인 바로 질문의 자기-반성성을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아마도 그렇기때문에 정치학은 이러한 질문의 학문으로서 현재적 곤궁과 대면할 수 있는 실재적인 동시에 주체적인 질문이 생동하는 위상을 지닌 학문일 때에만 그 자신의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3.4.4. 질문의 귀환을 요구하기


렇다면, 이렇듯 질문의 정치학의 귀환이 요청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러한 유토피아적 제스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윤리적 제스처는 주체를 요청한다.) 누가 그것을 떠맡겠는가. 사회와 주체의 이중 결핍이라는 곤궁과 대면하기 위해 진실의 자리에 과감히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정치학과와 외교학과의 분리를 통한 커리큘럼 개편을 요구할 것인가.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요구할 것인가.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내부적인 돌파만이 그 해법일 것이다. 이번 정경대학생회에서는 “정경대학 통합 커리큘럼특별위원회”를 조직하여 커리큘럼에 대한 점검 및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하는데, 학생사회의 오래된 매개로서 학생회가 이러한 화두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어쩌면 대학사회에 실용성만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상황은, 오히려 질문의 영역이라는 대학적인 특이성이 커리큘럼에서 들어나기에 최적의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위원회를 설치하고 활동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이라는 심연과 회피하기위한 방어수단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문제는 더욱 중층적이고, 그렇기에 그 중핵을 가로지르는 실재적 질문과 행위가 요구되는 것이다.

 




3.4.4.1 21그람의 가능성

 

    3.4.4.1.1  방향성


위원회가 실천적으로 작동하려면 먼저 정경대 학생회에서의 구성원들이 통합커리큘럼의 방향에 대해 설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경대 통합커리큘럼의 방향성으로서, 영국 Essex 대학의 행정학부에 개설되어있는 “이데올로기와 담론 분석(IDA) 과정”을 하나의 전형type으로 제시하고 싶다.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다양한 문제들이 사회에 현존한다. 신자유주의의 무분별한 발호로 인해 사회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러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도덕적인 만족은 얻을 수 있겠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또한 오히려 문제들에 대한 강박적인 해결의지는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상쇄시켜, 신자유주의의 작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들에 관여하는 것을 통해 이슈화를 시키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지만, 나아가 핵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늘날의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질문이 핵심적 화두인 것이다. 또한 단순히 오늘날의 문제들에 대한 지식을 배운다 하여도 지식이 행동을 추동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일종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지식know은 실재적인 질문에 대한 지식의 현실화 혹은 현재의 핵심적인 질문의 현실화(k)now를 회피하기 위한 방어일 수 있다. 과거에는 잘못을 행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잘못을 행한다고 생각되었지만, 오늘날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잘못된 것임)을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행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냉소적 지식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변혁에 대해서 냉소하고 행동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진실이 된다. 속지 않으려는 자가 속으며, 속는 방식으로 속지 않는다. 예를들어 ‘나는 그것을 잘 알아, 그러나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 이데올로기와 오히려 탈-정치적이기에 가장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는, 경제가 탈-정치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탈-정치적 경제 이데올로기를,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행동을 억압하는 지식know에 있어서 그 지식을 현실화(k)now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오늘날의 지식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물음을 품을 수 있는 혹은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기존의 생각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할 수 있으며, 같은 행동이라도 21g의 질문의 가능성을 포함한다면 기존의 행동과는 한 끝 차이지만 최대차이로서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질문이 가지고 있는 자기-반성성에 의한 것인데, 질문에 있어서 이러한 자기-반성성이 없다면 질문 없는 질문과 질문 없는 행동으로 귀결될 뿐이다. 그렇기에 질문에 대해 질문한다고 해서 단순한 행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질문이 과잉으로서의 질문(중핵을 꿰뚫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한 질문으로서의 행위(과잉으로서의 질문을 포함하는 행동)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질문이야말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충분조건이며, 질문의 자기-반성성에 의해 추동된 실재적 행위야말로, 질문을 질문이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질문과 행위 그리고 자기-반성성은 보르메스의 매듭처럼 서로 겹쳐있다고 할 수 있다. 주체는 이러한 질문이 질문 자신과 조우하는 자기-반성적인 선회의 과정 속에서 불가능한 실재적 질문 그 자체의 모습으로 섬광처럼 터져 나온다. 뜬금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학생운동은 단순히 외부에 해결을 촉구하고 호소하거나 담론 속의 주체화를 통한 정치적 동원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운동의 조건으로서의 학생사회로 되돌아가 먼저 질문으로서의 매개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이행의 과정 속에서 사회의 내재적 간극이자 질문이라는 가능성의 공간으로서 오직 대학 안에서 학생만이 할 수 있는 자기-반성성을 기입하는 실재적 행위가 사회 변혁의 내적 추동력이자 도화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만족에 의해 추동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만족(행동)은 언제나 잉여적인 만족(불만족에의 만족)을 양산하지만, 그 잉여만족 자체(만족 그자체)가 되지못하기 쉽다. 때문에 우회적인 만족(불만족 그자체)을 통해 잉여만족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이데올로기와 담론 분석(IDA) 과정”과 같은 커리큘럼이 정경대 통합 커리큘럼으로 정착될 수 있다면, 학생들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오늘날의 질문들과 대면하고, 질문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IDA과정은 광대한 비판이론의 전통에서 이데올로기와 담론에 대한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시즘, 정신분석적 이론에 이르는 영역들을 다룬다. IDA과정에 포함되어 있지만, 특히 라캉주의 정치학의 경우에는 질문과 행위, 윤리와 주체 그리고 책임, 진리와 정치, 환상과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질문이라는 자기-반성성을 그 자신의 중핵으로 품고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Essex대학 행정학부의 “이데올로기와 담론분석과정”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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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상자입니다 ^^ ]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

 오늘날의 시대는 스스로를 탈이데올로기적이라고 자유를 선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Matrix처럼 우리가 온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가장 자유롭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지요. 다시 말해서 문제는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순수한 이데올로기의 한 가운데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자유롭게 느끼는 순간에 가장 자유롭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이데올로기 밖에 없을 수 있다면,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내부에서부터 불가능해질 수 있는 질문의 지점, “우리가 온전히 자유로운 것 같은 순간에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자유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와 이데올로기 자체의 한계를 사유하는 것, 그것이 자유를 사유함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동시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지 않을까요. 질문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것, 그것이 이데올로기 비판 및 분석의 목표입니다.

 

                                                                                                                                                                                

 

 

 

"어떻게 이데올로기들은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시키는가?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인 삶들을 구성하고 틀 지우는 주요 정치적 담론들과 이데올로기들은 무엇인가? 현대의 정치적 분석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주요 이론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러한 이론들은 우리가 정치과정들의 핵심을 평가하고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IDA과정은 이데올로기와 담론에 대한 후기구조주의이론가, 포스트-마르크시스트, 그리고 정신분석적 이론들의 핵심적인 흐름들을 소개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이렇듯 IDA과정은 광대한 비판이론의 전통 속에서 루이 알튀세르, 알랭 바디우, 자크 데리다, 미쉘 푸코, 안토니오 그람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이론가들의 위치를 정립하게하고, 특유의 이데올로기들과 담론들 그리고 정치적인 활동들을 분석하는 통합적인 접근을 제공한다. 또한 IDA과정은 구체적인 정치적인 사례들에 대한 토론을 통해, 그리고 선택된 텍스트들을 자세히 읽는 것을 통해, 어떻게 그것들이 정치적인 분석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지와 이러한 분석적 접근에서의 핵심개념들을 명확히 한다. 이 과정은 경험적인 현상들을 분석하고 문제화하는 특유의 연구방법을 발전시키며, 어떻게 그 접근법이 동일성/차이의 역학관계들, 자본주의 세계화의 모순되는 논리, 그리고 정치체제의 형성과 실행의 역설적인 과정들, 사회적 운동들의 역할, 정치적인 저항의 새로운 형태들과 같은 이슈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에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이데올로기와 담론 분석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정치-철학에서의 현재적인 논쟁들을 다룰 수 있게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다." [Essex대학 행정학부 대학원 이데올로기와 담론 분석 과정 안내문에서]

 

 

정경대학 내 학과들과 IDA과정의 접합성을 생각해보면 정치학과와 사회학과의 경우, 학문의 영역 이 서로 겹치며 특히 이론과 현실사회분석부분에서 IDA과정과 접목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된다. 행정학과의 경우에는 Essex 대학의 IDA과정이 행정학부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선례로 수용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행정가들이 자신의 행정과정에 대한 성찰적 사유가 불가능하다면 내적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론학과의 경우 비판커뮤니케이션 이론의 맥락으로서, 경제학과와 무역학과의 경우는 IDA과정에 경제철학과 같은 과목의 추가를 통해 경제적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접합점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4.4.2 매개하는 잠재적 가능성, 외양하는 불가능성

 

    3.4.4.2.1  방법과 주체 그리고 매개
 


한편 방법에 있어서 단순히 학생들의 의견을 조사하여 커리큘럼을 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커리큘럼을 분석하여 대학적인 특이성을 포함하는 학문부분을 추가‧강화하는 형식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학생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것인지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에서 제시된 논문 2003년 한국정치학회보, 제37집 제5호에 등재된『정치학교육개선을 위한 교과과정개발 - 실용적 가치와 경쟁력강화를 중심으로 (김영래 등)』에서 학생들에게 바림직한 교과과정의 개편방향을 묻는 설문에 있어서 ‘실용과목의 강화’를 선택한 학생이 전국 47개 대학 정치외교학과 학생 508명 중 66.1%(수도권53.5%)를 차지했다는 것(2문항 선택가능)은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다음으로는 ‘교수수증가’가 43.8%, ‘강의기법 개선’이 40.4% 등의 요구가 있었다. 수도권의 경우 실용과목 강화(53.5%), 교수수증가(52.5%), 과목수증설(50.9%)의 순이었다. 이러한 선례를 생각해볼 때, 학생들에게는 질문을 포함하는 지식보다 보다 실용적인 지식을 더욱 선호할 것이라 예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실용과목을 증가시키는 것도 대학입학이 기업입사와 동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아니 대학교육과정이 기업들의 인력공급공정이 되더라도, 결코 기업의 실무에서 다루어지는 정보들의 변화속도와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실용지식의 간극은 해소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커리큘럼에 있어서 질문의 영역을 외양시키고자 한다면, 단순히 설문을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조사하는 방법보다는, 기존의 커리큘럼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먼저 학생회들의 지지를 얻는 것과 그러한 토대를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구성해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학생회의 경우를 보았을 때 그 단어 자체에서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광장이라는 측면보다 단순히 선출된 1인을 중심으로한 특정집단이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지원, 민원접수해결 정도의 역할로 그치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편 학생 없는 학생회와 학생회 없는 학생이라는 말처럼, 현재 파편화된 학생사회에 있어서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학생회가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지만. 학생들의 참여가 없는 상황에서는 대학 당국이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받아 들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존 학생회가 학생사회에 있어서 매개로 기능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재 대학사회의 제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나, 내부적인 측면으로는 학생회가 제도화될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추측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80년대에 학생회가 제도적 자치기구로 공식화될 당시에는 그 전제조건으로 학생사회에 있어 광장이자 매개로서의 역할이 이미 담보되어있던 상황이었다. 학생사회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90년대에도 신입생들의 학회 입회률이 80%를 상회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에 학생회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구비되어 있었다. 때문에 당시 학생사회의 그러한 응집력을 효율적이고 집약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도구적 측면으로 1인집정의 대통령제를 모방한 학생회제도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사회에서 광장이나 매개가 사라진 오늘날에 있어서, 단순히 행정 및 집행기능으로서 작동하는 기존 학생회 체제는 학생사회를 매개할 수 있는 광장으로서의 역할수행에는 부적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여러 노력이 있어왔겠지만 학생회 자체에서도 기존의 학생회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나 그에 대한 공론화작업이 부재하는 듯이 보이며, 각종 총학선거활동이나 공약에서 보이듯이 단순히 생활진보도 아닌 학생복지와 민원접수의 역할로 그 기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90년대 학생사회의 내재적 균열을 직시하려고 했던 선배들의 노력과 문제의식조차 총학생회가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단적으로 직접민주주의라는 표어를 내세운 현 총학의 공약들을 살펴보면, 학생에게 권리가 있다고 인식하기보다는 선출된 학생회가 권력을 학생들에게 일정부분 수혜의 형식으로 배분한다는 오만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직접참여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직접참여라는 느낌보다 간접참여 혹은 참여를 허용하는 주체가 먼저 주어져 있고 일반학우들은 그 허용여부에 따라 참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GDR 최후의 날 동독 공산당에 저항하며 광장으로 뛰쳐나온 군중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그 인민이다!” 적어도 직접민주-참여를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그 학생이다!”라는 구호에 근접할 수 있는 한계점까지는 다가가 봐야하지 않을까. 단순히 예산공개, 감시제도. 옴브즈맨 형식의 수동적 참여를 허용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문제의식으로는 학생사회에 있어서 광장이라는 빈-공간을 여는 작업은 충분치 않다. 한 학기가 지났음에도 구체적인 방안도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은 것 같고, 그에 관하여 질문을 해보면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라고 하지만 회의록이나 공약페이지에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어있지 않으며, 공개된 수준은 앞에 약술한 것과 같다. 구체적인 기획이나 방안 등이 부재하다면, 단순히 자신들의 한도내에서 설문을 작성하여 배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행 중인 토의내용을 공개하고 공청회나 토론회 혹은 연사초청강연회 등등을 통하여 학생사회에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공론화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사회에서 광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을 열려는 시도라도 하였어야한다. 그러한 과정이 없음은 이러한 공약들이 단순히 학우들의 간접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집행력을 강화하고 지지하게 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경우 아마도 직접참여민주제를 학생회론에 적용하게 된다면 선거기간에 열을 올리던 활동들을 통해 획득했다고 가정되는 헤게모니를 실제 총학생회 운영과정에서도 학생사회의 광장에 다시금 내어놓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과도한 추측이겠지만 이러한 회피에서 학생사회 속의 광장이라는 공간이 학생회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만약 일반 학우들이 총학생회에 참여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학생사회의 일반의지로서의 대학적인 특이성에 대한 토론을 통해, 그러한 특이성에 입각한 활동을 일반 학우들로부터 이끌어내고 요구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짧은 선거기간동안 표어와 이미지 경쟁으로 총학선거가 진행되었던 과거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않은가.

학생활동에 거의 참여해보지 않았기에, 기존 활동내용들과 학생회활동능력의 범위를 알 수가 없으나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학생회와 학생들 사이의 매개가 사라진 상황에 있어서, 먼저 학생사회 내에서 매개를 재-구성할 수 있는 활동으로서 학생회가 참여하는 학생위원회의를 구성하고 학생위원을 모집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매개가 요구되는가? 매개가 요구되는 이유는 학생사회에 있어서 매개 없는 직접적인 개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매개가 되는 방법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회 안에 학생사회라는 광장을 여는 일은 파편화 혹은 개별 집단화되어 학생들의 참여와 연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대학적인 특이성을 다시금 주장하며 학생사회 내에 학생회 스스로가 매개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매개를 통해 중론을 형성하며 학생사회의 일반의지를 담지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학생사회 내 ‘반성적’ 매개의 구성을 위한 학생위원의 선발과 학생위원회의 형성에의 시도는 근원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가? 


 


매개없는 개입은 없다.jpg

매개 없는 직접적인 개입은 스스로가 매개

                                                           자체가 되는 것으로서만 가능하다.

 


 

         학생위원회의.jpg      

 

 

 

학생(사회).jpg  
학생회 속에서 학생사회라는 광장을 여는 질문이라는 대학적 특이성을 외양시킬 수 있는

 반성적 매개를 형성하는 것을 통해 학생사회의 내적 동력을 재구성하며, 중론의 형성과

동시적으로 직접적인 돌파를 실현한다.




이러한 기획은 학생사회의 개별집단적 파편화와 그로인한 학생들의 연대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에 있어서, 만약 대표로서의 정당성을 지닌 학생회나 그 근거로서의 학생들이 매개의 재-구성이라는 학생사회의 근본적 명령이자 절박한 요구를 품고 있다면, 실현 불가능한 기획은 아닐 것이다. 어느 20대에게 들은 내용으로는 1학년 강의에서 교수가 김예슬 선언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물었을 때, 50명중에서 알고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가 그와 관련해서 자신의 생각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줬었는데 50명중 단 한사람만이 동의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머지는 부정적 혹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생각하면 학생회가 아닌 학생위원들의 숫자가 적을 수는 있으나, 학문의 영역에서 질문의 공간을 외양시키기 위해서는, 이렇듯 물음을 품을 수 있거나 질문에 예민한 50명 중의 1명의 참여와 활동이 간절한 것이다. 만약 이들이 학생위원 또는 교육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이러한 학생위원들의 존재는 파편화된 학생사회 속에서 학생위원회의가 학생들 사이의 매개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계속) 

 

 

- - - - - - - 다음 5화에서 이어집니다. '3.4.4.2.1  방법과 주체 그리고 매개' - - - - - - -

댓글
2010.12.06 05:35:43
e-Lee

볼때마다 느끼지만...이런글은 어떻게 쓰는건지..ㄷㄷㄷㄷㄷㄷ

댓글
2010.12.28 15:48:21
識者無識

그런가용.. ㅎㅎ;

저도 처음 생각해보는 것이기도 해서인지.. 복잡하게 쓰는 것 같기도해요. 복잡해도 함께 생각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곤 하지만..

ps: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바래요... 바람이 거세어지니 완전 겨울로 접어든 거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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