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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27
회계사 도전할려고 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겠죠?
회계사 도전할려고 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겠죠?
2009.01.07 04:29:19
당신이 첫 노령연금을 손에 쥐는 날.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노령연금을 탄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연금을 30일로 쪼개는 계산을 마치고 쓴 소주 한잔을 털어 넣으며 긴 한숨을 내쉴지 모른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란 말인가.
환갑이 넘은 ‘그’도 미국 정부가 주는 월 105달러의 연금을 받은 첫날 무엇을 할 것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1890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6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홀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했고 6살인 그는 3살과 젖먹이 두 동생을 혼자 돌봐야했다.
조리, 빨래 등 집안일에 능숙하게 된 나이가 7살. 12세에 어머니가 재가하자 그는 졸지에 가장이 되어 소방대원, 보험외판원, 유람선 종업원, 주유소 직원 등을 전전하며 한 달에 4달러 이하를 받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조그만 가게 하나를 장만했다. 그가 꿈에 그리던 가게였다. 그러나 39살 되던 해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한 푼 남김없이 도산하고 말았다.
알거지 가된 그는 州의 한 주유소에서 일하며 재기를 꿈꾸지만 그만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생활고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동생을 돌보느라고 숙달된 조리솜씨가 전부였다. 그는 압력솥에 튀김을 만들어 팔았다.
그런데,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주유소 근처에 142석짜리 식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풍요도 오래가지 못했다. 州의 대표 요리로 선정될 정도로 명성을 날리던 어느 날, 식당은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하게 된다.
어떻게 마련한 식당인데....앞이 캄캄했지만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예전보다 규모가 작은 식당을 다시 열었다. 천신만고 끝에 매출을 늘려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무심하게도 성공은 짧고 실패는 길었다. 경제공황이 다시 찾아왔고 마을의 주요 도로가 식당에서 몇 킬로 떨어져 개통하므로 써, 환갑이 넘은 그는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그동안 하는 사업마다 망하고, 죽은 아들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아 정신병원에 드나들었고 ,이를 보다 못한 아내마저 그를 떠나고 말았다.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 환갑이 넘어 받은 첫 연금 105불을 손에 쥔.
생각 끝에 그가 연금을 가지고 한 일은 ‘사업’이었다. 이번에도 요리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식당을 마련할 돈도, 은행에서 대출 받을 자격도 없던 그는 튀김을 남의 식당에 납품하겠다는 일종의 체인사업을 계획한다.
식당을 돌아다니며 그의 튀김을 시식하라며 체인점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식당주인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정신병 경력의 환갑을 넘긴 노숙자취급하며 계획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낡은 차로 여기 저기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문전박대 하는 곳도 많았다. 이렇게 거절당한 횟수가 무려 1009번.
1010번째 가게 앞에 선 그,. 안면이 있는 한 식당주인이 안쓰러운 마음에 납품을 허락했다. 마침내 1010번째 방문 만에 성공한 것이다.
1009번의 거절 끝에 첫 체인점에 계약한 때가 그의 나이 65세. 이렇게 2년 동안 모든 걸 걸고 뛴 영업성과는 고작 4군데 납품뿐.
하지만 그는 차 뒤 트렁크 속에서 잠을 자며 영업을 하였고, 튀김의 맛이 입소문 타면서 체인점 수가 점점 늘어 그의 나이 74세에 600여개의 체인점이 생겨났다.
그는 9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전 세계 수천 곳의 체인점이 번창하고 있다. 그 체인점이 바로 켄터키 치킨(KFC)이다.
체인점 앞에서 하얀 양복을 입고 동상처럼 서있는 인형의 모델이 바로 KFC창립자인 커넬 샌더스다.
그에게 나이는 없었다.
노령연금을 탄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연금을 30일로 쪼개는 계산을 마치고 쓴 소주 한잔을 털어 넣으며 긴 한숨을 내쉴지 모른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란 말인가.
환갑이 넘은 ‘그’도 미국 정부가 주는 월 105달러의 연금을 받은 첫날 무엇을 할 것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1890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6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홀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했고 6살인 그는 3살과 젖먹이 두 동생을 혼자 돌봐야했다.
조리, 빨래 등 집안일에 능숙하게 된 나이가 7살. 12세에 어머니가 재가하자 그는 졸지에 가장이 되어 소방대원, 보험외판원, 유람선 종업원, 주유소 직원 등을 전전하며 한 달에 4달러 이하를 받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조그만 가게 하나를 장만했다. 그가 꿈에 그리던 가게였다. 그러나 39살 되던 해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한 푼 남김없이 도산하고 말았다.
알거지 가된 그는 州의 한 주유소에서 일하며 재기를 꿈꾸지만 그만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생활고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동생을 돌보느라고 숙달된 조리솜씨가 전부였다. 그는 압력솥에 튀김을 만들어 팔았다.
그런데,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주유소 근처에 142석짜리 식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풍요도 오래가지 못했다. 州의 대표 요리로 선정될 정도로 명성을 날리던 어느 날, 식당은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하게 된다.
어떻게 마련한 식당인데....앞이 캄캄했지만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예전보다 규모가 작은 식당을 다시 열었다. 천신만고 끝에 매출을 늘려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무심하게도 성공은 짧고 실패는 길었다. 경제공황이 다시 찾아왔고 마을의 주요 도로가 식당에서 몇 킬로 떨어져 개통하므로 써, 환갑이 넘은 그는 다시 빈털터리가 된다.
그동안 하는 사업마다 망하고, 죽은 아들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아 정신병원에 드나들었고 ,이를 보다 못한 아내마저 그를 떠나고 말았다.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 환갑이 넘어 받은 첫 연금 105불을 손에 쥔.
생각 끝에 그가 연금을 가지고 한 일은 ‘사업’이었다. 이번에도 요리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식당을 마련할 돈도, 은행에서 대출 받을 자격도 없던 그는 튀김을 남의 식당에 납품하겠다는 일종의 체인사업을 계획한다.
식당을 돌아다니며 그의 튀김을 시식하라며 체인점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식당주인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정신병 경력의 환갑을 넘긴 노숙자취급하며 계획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낡은 차로 여기 저기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문전박대 하는 곳도 많았다. 이렇게 거절당한 횟수가 무려 1009번.
1010번째 가게 앞에 선 그,. 안면이 있는 한 식당주인이 안쓰러운 마음에 납품을 허락했다. 마침내 1010번째 방문 만에 성공한 것이다.
1009번의 거절 끝에 첫 체인점에 계약한 때가 그의 나이 65세. 이렇게 2년 동안 모든 걸 걸고 뛴 영업성과는 고작 4군데 납품뿐.
하지만 그는 차 뒤 트렁크 속에서 잠을 자며 영업을 하였고, 튀김의 맛이 입소문 타면서 체인점 수가 점점 늘어 그의 나이 74세에 600여개의 체인점이 생겨났다.
그는 9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전 세계 수천 곳의 체인점이 번창하고 있다. 그 체인점이 바로 켄터키 치킨(KFC)이다.
체인점 앞에서 하얀 양복을 입고 동상처럼 서있는 인형의 모델이 바로 KFC창립자인 커넬 샌더스다.
그에게 나이는 없었다.